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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간호사 멘토 소피아입니다. 제가 있는 뉴욕에서는 3월 말부터 5월 중순시기에 코로나 바이러스 곡선의 최정상을 찍었습니다. 이미 1-2월부터 시작된 중국과 한국의 상황을 봐왔기 때문에 미국은 더 준비가 철저히 되어있겠지 라는 생각은 그야말로 저의 크나큰 착각이었습니다.
뉴욕주에서 첫번째 확진자가 발생한 동네는 저희 병원과 20분 거리였습니다. 그 환자는 그 전 주말 거대한 파티에 참석을 하였고, 북적대는 기차를 타고 맨하탄으로 출퇴근을 하던 분이셨습니다. 그 환자는 파티 참석 전에 담당 의사를 방문했는데, 그 의사가 저희 병원 소속이었고, 그렇게 저희 병원은 물론이고 주변 다른 동네들까지 순식간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응급실을 떠난 지 1년쯤 되는 시기였습니다. 외래수술과로 옮겨서 응급실과는 비교도 안되게 편안한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고 나서부터 생사가 달린 응급수술 외 외래수술들은 모두 취소하는 추세였습니다. 이미 우리 병원 응급실은 반으로 나눠어져서 급하게 음압병실들을 더 설치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제 담당 매니저에게 찾아가서 응급실을 도와주고 싶은데 가능한것인지 물었고, 인사과와 아무 문제가 없는걸 확인한 후, 외래수술과 대신 응급실로 출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감사인사를 받으려고 응급실로 간 것은 전혀 아니었지만, 같이 일했었던 동료들 포함 모두가 반가워하고, 감사해했습니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병원이 변해갔습니다. 응급실 주차장에는 주 경찰관들이 하룻밤새에 코로나 감별 텐트를 설치하였고, 어떤 증상이던 모든 환자들은 텐트를 통해 들어와서 코로나 관련 질의응답을 하고, 체온과 맥박을 1차로 잰 후에야 그 결과에 따라 각자 다른 구역의 응급실 본 병동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병원 입구마다 체온을 재는 직원이 정해졌고, 정상체온일 시 매일 매일 색깔이 달라지는 스티커를 직원 아이디 카드에 부착하고 마스크를 받아 출근하였습니다. 환자 외 방문객은 전면 금지 되었습니다. 병원 내 구내식당의 테이블과 의자들은 반으로 줄어들었습니다. 미국식 인사인 포옹이나 하이파이브가 없어졌습니다.
매일매일 병원 행정실에서 현 병원 상황을 업데이트하는 이메일이 왔습니다. 처음에는 5층에 있는 한 병동만 Covid Unit 으로 정해놓고, 병동 전체를 음압병동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음압병동들이 더 늘어났습니다. 응급실에는 평소에 많이 오는 복통환자들이 5% 미만으로 줄었고, 코로나 지정 병원이 아니었지만 코로나 환자들이 물밀듯이 들어와서 지정 병원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저희 병원은 증상 없이도 코로나 테스트를 받을 수 있는 지정병원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불안에 떤 시민들은 코로나 테스트를 받고 싶어했습니다. 2주간이나 증상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 제일 필요한건 집콕, 손소독, 그리고 마스크 착용이라는 것을 하루에 셀 수도 없이 말씀드렸습니다. 아무 증상이 없는데 왜 코로나 테스트를 받으러 오시냐, 차에서 나올 필요도 없이 드라이브스루로 할 수 있는 코로나 테스트 지정 지점에 가셔라, 지금 이 병원 안에 들어가면 없던 코로나도 얻어 나올 수 있을 정도로 코로나 환자들이 많다라고 드라마틱하게 말씀을 드려야 이해를 좀 하셨습니다.
사실 저희 병원은 3월 초반에 자발적으로 마스크를 쓰고 다니던 병원 직원들에게, 미리 예방을 잘한다고 칭찬하기는 망정 오히려 병원 내에 불안한 분위기를 조성한다며 마스크를 벗으라고 하였습니다. 심지어는 해고를 당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직원도 있다고 했습니다. 모두 쉬쉬하는 분위기에 병원장이 이 소식을 듣고는 노발대발 하시며 당장 병원측에서 전 직원에게 매일매일 새로운 마스크를 제공하라는 공지를 올렸습니다. 원래는 음압병실에 한번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N95 마스크를 바꿔써야하지만 미국 전체 마스크의 물량이 동이 난 상태에서 그렇게 호사롭게 마스크를 쓸 수가 없었습니다. 저희 병원은 주변에서 많은 기부를 해주셔서 비록 정식 의료용 N95 마스크는 아니었지만 공업용 N 95 마스크를 하루에 한개, 본인 확인 하에 제공받을 수 있었습니다. 제 남편이 일하는 병원은 한번 N95 를 받으면 마스크가 닳아 없어지거나 더이상 못 쓰는 상태가 되고나서 다른 직원이 봐도 나쁜 컨디션이라는 "확인 후에"야 새로운 마스크를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나이가 많으시거나 질환이 많으셔서 코로나바이러스에 특히 위험하신 직원분들은 무급이던 유급이던 휴가 신청을 하셨습니다. 끝을 모르고 한없이 올라가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상황에 대비해 저희 병원 측에서는 뉴욕주와 협업해서 커다란 임시 텐트 병원들을 병원에서 5분 거리에 짓기 시작하였고, 전국에서 TRAVEL NURSE 들을 모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전 해의 성과에 대한 결과로 매년 4월에 지급되었던 연봉 인상은 아무말도 없이 동결되었습니다. TRAVEL NURSE 들에게는 일주일에 5천불 넘게 지불이 되는데, 정작 병원의 정직원들의 베네핏은 한없이 뒤로 밀려나고 있었습니다. 연봉 인상은 상황이 나아지면 나중에 처리될 것이라는 이메일만이라도 하나 보내줬으면 좋았을텐데 병원에서 우리는 그냥 한낱 일회용인 것인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응급실에선 전체 병동의 반을 음압병동으로 만들었다가 결국 75%까지 음압병동의 크기가 커졌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던 때에도 심장마비, 뇌출혈, 교통사고 환자들은 끊임없이 들어왔기에 어느 정도의 "CLEAN AREA" 는 무조건 사수해야했습니다. 음압병동에 배정이 되면 최소 6시간에서 12시간까지 우주복같이 생긴 방역복을 입고, 신발 커버를 신고, 머리를 감싸고, 장갑을 두겹 끼고 식사는 커녕 화장실도 가지 못한 채 근무를 해야했습니다. 병원에 중환자실은 두 병동이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세개의 병동이 중환자실로 변해서 한개의 "CLEAN" 깨끗한 중환자실과 네 개의 코로나바이러스 전용 중환자실이 생겼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의심이나 확진 환자를 받은 간호사는 한번 그 병실 안에 들어가면 최대한 모든 것을 한번에 마치고 나와서 병실 안에 들어가는 빈도를 최소한으로 줄였고, 그 때문에 그 어느때보다 팀웍이 제일 중요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병실 안에 들어간 간호사가 병실 밖의 무언가가 필요하면 유리문이나 환자의 콜 벨을 통해 대화를 하였고, 코로나테스트기는 세개의 봉투 안에 넣는 등 상호 오염의 위험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모두 노력하였습니다.
응급실에 들어오는 환자들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가득했습니다.
다른 증상 없이 고열이 이틀있어서 들어온 환자를 모니터에 연결해보니 조금만 움직여도 갑자기 산소농도가 뚝뚝 떨어져서 입원 결정을 내리니 나는 아직 죽으며 안된다며 울부짖으시던 환자의 눈빛,
최근에 여행 갔다온 하우스메이트와 같은 층을 쓰지도 않는데도 코로나 증상이 느껴져서 들어온 환자의 겁먹은 표정,
자신의 어머니가 숨 쉬는게 힘들다 하신다 하며 어머니를 휠체어에 모셔 들어온 후,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응급실 병동으로 들어가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시는 따님의 얼굴,
잔기침과 미열이 있는 정도인데 갓난아가인 딸에게 옮기고 싶지 않아서 병원에 왔다가 코로나 판정을 받고 눈이 빨개져서 아내에게 영상 통화를 걸던 환자의 얼굴 등...
중환자실에서 일했던 동료의 말에 의하면 중환자실의 감정은 더 깊고 짙었습니다.
보호자가 병원에 들어올 수 없기에 환자분이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에도 영상통화만으로만 인사를 건넬 수 밖에 없던 환자 가족들의 동물같은 울부짖음,
바로 옆 병실에서 온갖 알람소리가 울리며 의료진이 급하게 뛰어다니던 모습을 본 환자가 살기 위해 처절하게 열심히 산소호흡기를 끼고 호흡을 하던 모습,
나는 절대 이렇게 못 죽는다, 절대 이렇게 안 죽는다, 살아 나갈 것이다 라며 매일매일을 울부짖었지만 3주 후에 결국 운명을 달리하신 환자 분 등등...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 집에서 최대한 나오지 말라는 주지사의 오더들을 무시하고, 개인의 자유를 울부짖는 철없고 무식한 미국인들을 하루만, 아니 단 한시간이라도 우리 병원에 데리고 와서 지금 이 환자들이 얼마나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일그러져 있는지, 이 사람들이 아무리 조심했어도 당신같은 사람들 때문에 이렇게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어떻게 느끼는지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는 동안 미국인들에게 의료진들은 HEALTHCARE HEROES 라고 불리게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하던 일들을 하는 것 뿐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참으로 멋쩍었습니다. 감사하게도 동네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음식들을 병원에 끊임없이 기부해주셨고, 음압병동에 들어가서 한동안 못나오는 동료들을 위해 상자를 따로 만들어서 "DO NOT TOUCH. COVID ZONE STAFFS ONLY". 라는 사인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분명히 한국과 중국의 사태를 봐서 이 사태가 미국으로 넘어올 것이라는 걸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초반에는 전혀 준비가 안되있었습니다. 마치 타조가 머리만 숨기는 것처럼 내가 지금 이 상황을 안 본 척하고 모르쇠로 지내면 이 사태는 발생하지 않겠지 라는 안일한 태도 덕분에 미국의 초기대응은 완전히 엉.망.진.창. 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세게 밀고나간 뉴욕 주지사 덕분에 점점 더 체계가 잡혀나가기 시작했고, 다행히 뉴욕은 현재 코로나 안전지역에 속합니다. 아무말 없이 동결되었던 연봉도 작년에 약속한대로 인상이 되었고, 생명수당이라고 불리는 코로나 바이러스 보너스도 받았습니다. 수술 관련 병동 외에는 하루에 두 번, 총 네시간 환자당 정해진 보호자 한 명만 면회도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가게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두면서 오픈이 되었고, 마스크 미착용시 입장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마스크를 거부하는 무식한 사람들이 있지만, 다행히 연초에 아시안들에게 국한되었던 인종 차별주의적 폭행도 없어지고, 마스크를 착용 안하면 주변에서 따갑게 쏟아지는 눈총들이 있기에 이렇게 new normal 이 시작되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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