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간호사

간호조무사들을 절대 무시하지 마세요

간호사 멘토 소피아 2020. 9. 3.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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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간호사 멘토 소피아입니다. 저는 외래 소아과에서 처음 간호사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의사가 네 분 계시는 프라이빗 오피스였는데, 보통 한 의사당 한명의 간호사가 담당을 했고, 저를 비롯한 다른 간호사들은 환자 관련 업무 말고도 환자가 바뀔 때마다 exam table 청소하고 셋업하는 건 기본, 퇴근 전 그 다음 날 필요한 물품들 정리 및 셋업, 필요한 약품들을 주문하고 배송이 오면 정해진 냉장고나 캐비넷에 분류해 넣기도 했습니다. Medical Assistant 라고 간호조무사 비슷한 직업군이 있긴 했는데, 그 친구가 하는 건 환자 차트 관련 업무가 대부분이어서 저는 그 곳에서 일하면서 딱히 간호 면허 없이도 할 수 있는 일들을 많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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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다란 병원에서 일을 시작한 후 부터는 간호조무사들 (Nursing tech/CNA)과 함께 일을 하게 되었는데, 처음에 누군가에게 어떤 업무를 위임 (delegate) 하는 것이 저에겐 참 힘이 들었습니다. Vital signs 확인, Finger stick check, Turning & Positioning patients, Assisting patients to a restroom 등의 일들은 제가 예전부터 이전직장에서 해왔던 것이었고, 한국의 유교사상이 깊이 박혀있던 저에게는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간호조무사들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는 것이 정말 어려웠습니다. 거기다가 어리고 초보 간호사라고 다른 간호사들한테도 안 받았던 태움 아닌 태움을 간호조무사들에게 받기도 했고요ㅎ (이 이유는 밑에 설명드리겠습니다.) 그러다보니, 

 

"부탁을 할 때의 어려움 + 간호조무사들이 날 싫어함 + 의 급한 성격 + 말도 안되는 간호조무사 대 환자들의 비율 (1:15명이 기본)"

 

로 인해 제 환자들 업무중에 딱히 간호면허가 필요없는 일들도 제가 직접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주변에서는 "그런 일들은" 간호조무사를 시키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지만, 제가 바쁘지 않을 때는 자리에 앉아서 말로만 다른 사람을 "시키는 것"보다 제가 직접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함), 그래야 제 마음도 편했습니다. 물론 그러다가도 절대 혼자서 못하는 업무이거나 간호사로써 제가 해야만 하는 더 중요한 다른 업무가 겹쳤을 때는 간호조무사들에게 도움을 청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제가 도움을 청할 때는 최대한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인것을 알게 된 간호조무사들은 저에게 점점 더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친해지고나서 이야기를 해보니, 그들도 그들 나름의 고충이 있었더라구요. 보통 새로운 병원이나 유닛에서 일하게 되는 간호사들은 대개 그 곳에서 경력이 제일 많은 시니어 간호사에게 교육을 받게 됩니다. 물론 다는 아니겠지만 그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그리고 그 후에 제가 지켜본 바에 의하면), 한 곳에서 몇십년 동안 일했던 시니어 간호사들 중의 몇명은 간호조무사들을 그들의 발밑으로 보고, 간호사가 충분히 할 수 있는 간단한 일도 일부러 간호조무사가 올 때까지 안하고 기다렸다가 시킨다거나 (예를 들어 안 바쁠 때 환자가 다 먹은 식판을 방 밖으로 꺼내놓기 아니면 따뜻한 담요 가져다주기), 간호조무사들을 인간 대 인간으로써 전혀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는 듯한 행동을 많이 한다는 거예요. 문제는 그 시니어 간호사가 초보 간호사를 오리엔테이션 시킬 때 그 나쁜 버릇을 가르친다는거죠. 그럼 그 초보 간호사도 그 행동이 잘못된건지 모르고, 그걸 그대로 흡수해버리는거죠. 그래서 마음이 많이 다친 간호조무사들이 처음 오는 간호사들에게는 까칠하게 행동을 하게 되는거고요.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이해한다고 이야기 한 후, 그래도 새로운 간호사들은 일단 믿어보는게 (give them the benefit of doubt) 어떠냐, 그리고 아니면 직접 대화하는게 낫지 않겠느냐 제안을 했고, 그들도 노력을 하겠다는 대답을 받기는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저에게 해 준 말, 

 

"We like the way you are. Don't ever change." 

 

     많은 "좋은" 간호사들이 초반에는 긍정적이었다가, 일이 손에 좀 잡히고 경력이 쌓이면 부정적으로 바뀌고, 간호조무사들도 무시하게 된다는 말이었죠. 원래 바뀔 생각도 없던 저였지만, 제 커리어 초반에 들었던 저 말은 제가 일을 하고 경력을 쌓을수록, 초심을 놓치지 않도록 문득문득 생각이 나곤 합니다. 저 대화 이후부터는 오히려 간호조무사들이 먼저 저에게 와서, '우리한테 시킬 일이 없느냐 너무 열심히 일하지 말아라' 라며 도움을 제안하는 등 저를 "꾀 안 부리고 열심히 일하는 간호사"로 인정해주었습니다. 그리고나서 제가 깨닫게 된 것은 간호조무사들이 저의 또다른 눈과 손과 발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꽤나 많은 간호사들이 간호조무사들을 '내가 시키는 간단한 보조업무만 하는 사람들' 로만 본다는 것을 일을 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Med-surg floor 에서 일했을 때는 너무나 바빠서 정해진 환자들 중에 제일 중한 환자들부터 라운딩을 돌고, 투약을 먼저 하는게 당연했습니다. 대개 오전에 간호조무사가 병동 환자들의 vital signs 를 체크하고, 만약 이상 징후가 있으면 담당 간호사에게 투약시간 전 알려주는 루틴이었는데, 어떤 간호조무사는 병동의 모~든 환자들의 바이탈들을 다 모아서 한번에 간호사에게 말하거나, 직접 말해주지 않고 컴퓨터에 저장만 하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어떻게 보면 굉장히 미세한 차이라서 간호조무사는 놓칠 수 있는 중요한 데이터들을 간호사들이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발견을 하기도 합니다. 

 

     사실 간호조무사들은 나의 간호사 면허라는 우산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만약 그 사람이 실수를 하고, 내 환자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최종적인 책임은 면허인인 저에게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간호조무사들이 없었다면 이미 정신없고 바쁜 제 쉬프트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바빠지기에 전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또 항상 그걸 표현하였습니다. 표현하는 방법은 간단하죠. 

 

공손하게 부탁하기 & 감사하다고 인사하기. 

 

 

   

     너무 간단하죠? 그런데 이 간단한 제스쳐를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얼마나 잊고 있었으면 제가 저렇게 간단한 제스쳐만 표현해도 간호조무사들이 제가 무안할 정도로 더 고마워했어요. 우리가 환자들이나 의사들에게 무시받고 싶지 않듯이 똑같은 거죠 :)

 

     제가 응급실에서 일했을 때 간호조무사들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는데요, 그 중에 제일 기억나는 에피소드를 공유하겠습니다. 응급실 중에서도 Psych 쪽을 맡고 있는 날이었는데요, 퇴근 15분 전 EMS 전화가 울렸습니다. 

 

"한 2-30대 되어보이는 술 취한 환자이고, 한 5분 후면 도착합니다. 혈압이 좀 높네요 213/120 정도. 곧 봅시다"

 

보통 자기 몸도 못 가눌정도로 심하게 술에 취한 환자들은 psych 쪽에서 수액 맞으면서 몇시간 누워있다 가는 경우가 많았기에 교대 전에 들어오면 간단히 리포트만 받고, vital signs 만 받아놔야겠다 생각했습니다. 환자가 도착하고, 간호조무사가 vital 를 잡는 동안 EMS에게 리포트를 듣고 있는데 환자가 바로 들것에서 임시침대로 이동하느라 자세히는 못 봤지만 환자 얼굴이 영 이상해보였습니다. 

 

"이 사람 술 취한거 맞아요? 술 냄새도 전혀 안나고, 얼굴이 지금 좀 이상해보이는데, 혈압은 좀 잡혔어요?"

"아 원래 이 사람 그 빠 앞에서 항상 술 취해 있는 사람이고, 우리가 도착했을 때도 쓰러져있는 이 사람 옆에 술병들이 굴러다니고 있었어요."

"그럼 지금 이 사람이 직접 술을 마신 걸 본 사람은 없는거죠?"

"뭐 그렇게 따지면 없는건데, 빠에 있던 사람들 말에 의하면 이 사람은 항상 술에 취해 있대요."

 

   

     뭔가 말이 앞뒤가 안 맞는다 생각하면서 환자한테 돌아섬과 동시에 vital 을 재고 있던 간호조무사가 "Something is not right with him." 이라며 내 이름을 불렀습니다. 무슨일인지 물어보니, 스패니쉬로 자꾸만 자기 어깨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세히 환자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오른쪽 눈커풀이 살짝 내려가있고, 동공은 초점없이 확대되어있었으며 왼쪽 손이 자꾸 오른쪽 어깨를 향하며 "어.....어...."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혈압이 너무 높은 탓인지 자동혈압기계는 작동이 안됐고, 청진기로 직접 혈압을 재보니 192/124 가 나왔습니다. 담당 의사에게 바로 전달하고 뇌출혈 의심 환자가 있을 때 울리는 Code Grey 를 작동시키고 CT 로 환자를 데려갔습니다. Subarachnoid Hemorrhage. 지주막하출혈 뇌출혈 환자였습니다. 퇴근시간을 훌쩍 넘긴 시각, 환자의 혈압과 플랜이 안정이 된 후에야 다음 간호사에게 리포트를 넘기고 퇴근을 하려는데 간호조무사가 저에게 오더니 

 

"내 말을 들어줘서 고마워"

 

라는 인사를 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물어보니, 대개 다른 간호사들은 자기가 환자를 보고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해서 얘기하면 별거 아닌 일로 치부하고 확인도 하질 않는데, 저는 항상 그 친구의 말을 들어준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너한테 고마워해야지. 너 덕분에 저 환자가 산거야. 난 솔직히 리포트만 받고 바로 퇴근하고 싶었는데 너가 뭔가 이상하다고 알려줬잖아. 내가 고마워." 

 

하니 그 간호조무사는 배시시 수줍게 웃으며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환자 케어를 하러 갔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간호조무사는 내가 없는 곳에서 나의 엑스트라 눈, 손, 그리고 발이 되어줍니다. 다 같이 존중하고, 그리고 존중받으면서 일을 하게 되면 아무리 궂은 일이라도 힘낼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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