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간호사

미국 응급실 간호사로써의 의무

간호사 멘토 소피아 2020. 9. 8.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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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간호사 멘토 소피아입니다. 응급실에서 일하다 보면 하루하루 건강하게, 아무일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운이 좋은 것인지 매일매일 느끼게 됩니다. 굿나잇 키스를 하고 함께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남편이 숨을 안쉬어 그렇게 갑작스럽게 인생의 동반자를 보내거나, 그냥 두통이 꽤 오래간다 싶어서 왔는데 제일 악성타입의 뇌종양을 판정 받는 젊은 환자 등 응급실에서 우리가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삶의 단면을 새삼 더 소중하게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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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급실에 어떤 이유로 접수를 했던 모든 환자들에게 반드시 물어보는 질문 중에 하나가 재산 관련 말고, 건강 관련해 유언장이 있으시냐 (living will), 응급 상황이 발생했을 시 우리가 심폐소생술을 포함한 모든 치료를 해드리는 걸 원하느냐고 물어봅니다. (Full code vs Do Not Resuscitate/Do Not Intubate) 대부분의 젊은 분들은 모든 치료에 동의를 하는데, 한 60대부터는 반응이 세가지로 나뉩니다. 

 

1. 모든 치료를 해달라.

 

2. 아 난 기계에 연명하는 식물인간이 되기 싫다. 그 DNR 인가 그거 맞다. 

 

3. 난 이미 DNR (Do Not Resuscitate: 심폐소생술 포기 각서) 가 있다. 

 

그 중에 2번으로 대답하시는 분들은 DNR 에 정확한 이해가 없으신 분들이십니다. 워낙 바쁘고 정신없는 응급실인만큼 간호사로써 중요한 의무들 중 하나인 patient education (환자 교육) 에 매번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가 힘들긴 하지만, 이 부분은 전 무조건 제대로 이해하시도록 설명을 해드렸습니다. 

 

"지금 우리 둘이 이렇게 대화를 하고 있는데, 만약 지금 당장 환자분 심장이 멈췄다고 하면 DNR 은 제가 아무것도 안하는거예요."

 

 

 

    그렇게 말하면 환자들의 표정은 묘하게 변합니다. 그 짧은 찰나에 말은 안 하지만 '내가 만약 지금 죽는다면' 이라는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눈동자가 흔들립니다. 그리고나서 그걸 원하는 것은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그제서야 나도 기계에 의존해서 숨을 쉬거나 (intubation), 식물상태로 기계에 연명하는것도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가슴압박 (resuscitation), 전기충격 (defib) 등 우리가 우선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의 방법을 다 하고 난 후에 정하는 것이지, DNR 은 존엄사를 인정해서 가슴압박 없이 편하게 보내드리는 것이라고 자세히 설명을 합니다. 그제야 이해를 하시게 된 환자분들은 자세한 설명에 감사해하십니다. 

 

     그리고나서 저는 만약 DNR/DNI 를 결정하셨으면, 그 문서를 환자분이 항상 가지고 다니셔야 한다고 설명해드립니다. 환자분이 이미 서류를 작성해놓으셨다고 해도, 만약 혼자 길을 가다가 심장마비가 와서 쓰러지셨을 때 지나가던 사람들은 당연히 앰뷸런스를 부를 거고, 그럼 그 분들은 오시자마자 흉부압박을 시작하며 다른 분은 환자의 지갑이나 핸드폰을 찾아서 중요한 서류나 연락처를 알아볼 겁니다. 그럴 때 living will 서류가 발견되면 거기에 나온대로 따르겠지만, 만약 그 서류가 집 안 금고안에 있다면 그 서류는 그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겠죠.  

 

 

     그 다음은 Health Care Proxy (검색해보니 한글로는 "건강 관리 대리인"으로 나오네요.) 가 있으시냐 물어봅니다. Health care proxy 란 간단히 말해서 응급상황이 발생해서 환자분이 직접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상황일 때, 환자의 치료에 대해서 결정권을 가진 사람입니다. 대개 가족분들 중에 한 명을 정하시는데, 이것도 무조건 가장 가까운 사람을 정하시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Health care proxy 로써는 환자분이 응급상황일 때 "정확히" 무엇을 원하시는지, 예를 들어 가슴압박은 하지만 intubation 은 원하지 않는다던가, 모든것을 다 해도 식물인간 상태가 된다면 몇일까지만 기다렸다가 보내주느냐 등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Health care proxy 는 "환자" 분이 평소에 어떤 치료를 원했는지, 대리인으로써 그 결정을 의료진에게 "전달해주는 존재"여야 합니다. 이런 이해도가 없이 무조건 가장 가까운 사람을 정하시게 되면, 그 health care proxy 로 지목된 사람은 막상 그 응급상황이 왔을 때, 차마 내 딸을, 내 동생을, 내 어머니를 이렇게 보낼 수가 없어서 환자가 평소에 원하던 것은 존엄사이었거나 정확히 어떤 식으로의 치료를 원하는 living will 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을 해서라도 내 가족 무조건 살려내라, 내가 이 사람 health care proxy 니까 내 말을 들으라며 막무가내로 의료진에게 소리를 지르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리고 저는 실제로 응급실에서 그러시는 분들을 참으로도 많이 봤습니다. 그래서 저는 health care proxy 에 대한 교육도 최대한 자세히 해드립니다. 보통 응급실에 오시는 분들을 위해 이런 내용에 관련된 책자가 있기때문에 저의 환자분들께는 항상 책자를 드려서 실제로도 읽어보시게 합니다. 

 

 

     응급실에서 일하게 된지 얼마안됐을 때, 새벽 4시쯤 앰뷸런스를 통해 심한 직장출혈의 (rectal bleeding) 환자분이 오셨습니다. 호흡도 매우 얕으셨고, 과다출혈로 인해 혈압도 잘 잡히지 않았습니다. 대장암 말기라고 하셨는데, living will 에는 DNR/DNI 가 정확히 명시되어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환자분의 따님이 정말 응급실이 떠나가라 당신이 health care proxy 니까 내가 원하는 대로 모든 처치를 다 하라고 소리소리를 지르며 응급실에 뛰어들어오셨습니다. 물론 굉장히 감정적이고 심각한 응급상황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따님을 진정시키고 환자분이 원하시는 것을 다시 한번 읊어드렸지만, 막무가내셨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따님이 원하시는대로 환자분의 가슴을 압박하기 시작했고 (CPR), 180대의 키에 40키로도 안되시던 환자분의 갈비뼈는 당연히 처음 흉부압박을 하자마자 골절이 되었습니다. (가슴뼈가 골절이 돼야 제대로 된 CPR 이다 라는 말이 있을정도죠.) 코드 30분 후에 담당 선생님은 환자분의 사망선언을 하셨고, 그렇게 저는 health care proxy 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제대로 마음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Did we do more harm than good? We were supposed to help our patients, or at least do no harm.

(From "Living and Dying in Brick City: Stories from the Front Lines of an Inner-City E.R. by Sampson Davis & Lisa Frazier Page)

 

 

    또 한번은 말기암 환자분이 호흡 곤란으로 응급실을 방문하셨습니다. 환자분은 한 문장을 다 한번에 끝내지 못할 정도로 숨을 힘들게 내쉬고 계셨고, 아들분이 모시는 휠체어에 앉아 응급실 방으로 들어오셨습니다. 환자분은 물론,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그 분의 아들분까지 DNR & DNI 의 뜻을 정확히 이해하고 계셨습니다. 그 분은 심지어 기본적인 의료처치인 혈액검사나 엑스레이나 CT 같이 이미징 검사도 원하시지 않으셨고, 진통제만 투여후에 한시간 내에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지셨습니다. 아들 분을 포함, 뒤늦게 도착하신 다른 가족분들도 눈물은 흘리고 계셨지만, 환자분이 어떤 방식을 원하는지 충분히 아셨기 때문에 그렇게 서서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응급실에서 일하고 있던 어느 날, 한국에 계신 어머니에게 카톡이 하나 왔습니다. 저희 할아버지가 intubated 된 사진이었습니다. 

 

"할아버지가 호흡곤란이 또 오셔서 응급실에 왔는데 우선 일시적으로만 이걸 해야한다네. 

금 중환자실 입원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야."

 

     평소에 폐가 안 좋으셨지만, 정정하셨고 몇일 전에는 직접 저와 통화도 하신 할아버지셨습니다. 저는 그 사진을 보자마자 어머니께 전화를 드려 상황을 물어봤는데, 어머니께선 이 intubation 이 "할아버지가 금방 나아지도록 도와주는 기구" 로만 이해를 하고 계셨습니다. 저도 응급실에서 일해서 얼마나 바쁜 상황인지 알고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의료진분들께서 intubation 을 너무나 간단하게 저희 가족들에게 설명하신 것 같아 너무 속이 상했습니다. 물론 extubation 해서 자가호흡으로 돌아오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지만, 이미 연세도 많이 있으시고 만성질환이 있으신 할아버지에게 intubation 은 사망선고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통화를 끝내자마자 바로 그 밤에 떠나는 한국행 비행기를 예약했고, 비행기 티켓 예약 후에 저의 매니저에게 가서 저의 할아버지 상황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미리 말씀드렸어야하는데 저도 이제야 상황을 전해들었어요. 

저는 오늘 밤 출발해서 일주일 정도 한국에 머무를 예정입니다. 

이것 때문에 제가 해고가 된 다고 하더라도 저는 가야합니다"

 

     매니저는 담담하게 저를 위로해주셨고, 제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시겠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해주셨습니다. 덕분에 그나마 편한 마음으로 한국에 간 저는, 바로 중환자실에 입원해계신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러 갔습니다. 

 

"할아버지, 저 왔어요."

 

intubate 이 되어서 sedated 이 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는 입으로 소리를 내어서 저에게 인사를 하셨습니다. 바로 외가 가족들과 가족회의를 열었고,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조심히, 하지만 정확하게 모두에게 전해드렸습니다. 할아버지가 평소에 DNR/DNI 를 원하셨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따라, 회의를 한 그 날 바로 병원 중환자실에 찾아가서 DNR 서류 작성을 하였습니다. 이미 intubate 된 상태이셨기에 바로 extubate 을 하는 건 오히려 더 고통스러우실테니 진통제와 진정제들만 놓아달라 부탁하고, 더 이상의 혈액채취나 테스트들은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몇일 후, 할아버지의 심장박동수가 40대로 접어들었을쯤 간호사분이 저희에게 연락을 주셨고, 할아버지는 소란스럽지 않게, 고통스러우시지 않게, 사랑하는 가족들의 품 안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미국에서는 또 한 때 DO NOT RESUSCITATE 의 문구를 가슴 앞쪽에 문신으로 새기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었는데, 사실 타투는 법적인 효력이 없다고 합니다. 그 대신, 환자가 원하는 것을 알았으니 심폐소생술 포기 각서가 지갑에 있는지 찾아본다거나, 가까운 가족에게 환자분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 계시는지 더 알아보겠지요. 

 

     죽음은 누구나 맞이하게 되는 것이지만, 그것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제가 이 세상 모든 분들을 저의 환자로 맞을 수는 없겠지만, 간호사로써 제가 맞이하는 모든 환자분들에게는 적어도 존엄사의 진정한 의미와 그 이유, 그리고 health care proxy 에 대해 정확히 설명해드릴 수 있다면, 제가 생각하는 제일 중요한 간호사의 의무 중 하나를 실천하고 있는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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