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간호사

미국 사회에서 살아남기 (ft. 간호사 태움)

간호사 멘토 소피아 2020. 9. 18.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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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간호사 멘토 소피아입니다. 간호대학교에서부터 숱하게 들어온 말이 있습니다.

"Nurses eat their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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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역으로 하면 "간호사들은 신규들을 잡아먹는다", 한국말로 하면 '태움' 이라고 보면 됩니다. 미국은 위 아래 없이 자유롭게 지낸다더니 이건 뭔 말인가 싶으시죠. 다른 문화와 다른 언어지만, 결국 사람 사는 건 다 똑같기에 참 웃기게도 그렇게 자유로운 미국 사회에도 왕따가 있고, 은따가 있고, 또라이가 있습니다. 다만, 뉴스로 들어온 한국의 '태움' 처럼 정말 사람이 죽어나게까지 괴롭히는건 본 적이 없고, 신규 간호사들에게 일부러 더 헤비한 환자들을 배정한다던지, 뭘 물어보면 일부러 무시하고 도와주지 않고 대답을 안해준다거나, 비꼬는 듯한 태도 정도를 실제로 보고 겪어봤습니다. 딱히 간호사들만 그런게 아니라, 의사들, 경찰들, 심지어는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이런 말이 나온다고 합니다. 사실 한 십년전부터 이런 문화를 없애고자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서 아마 더 이상은 이런 일이 빈번하진 않지만,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 이라는 것처럼 어딜 가나 언제나 좀 이상한 사람들은 있죠. 태움이던 왕따던 주도자와 가해자가 무조건 잘못한 것이기 때문에, 저희가 특히 다른 식으로 행동을 해야한다는건 없지만, 제가 미국에서 사회생활을 하며 배우고 겪어본 몇 가지 팁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1. 자책하지 말기

 

     누군가가 나를 무시하는 말투로 이야기를 하거나 무언가를 물어봤을 때 비꼬는 태도로 나올 때, 게다가 그게 계속 반복이 되면 '나한테 문제가 있나?' 라는 생각을 하기가 쉽습니다. 간호사라는 직업은 대부분의 과들이 다양한 사람들과 부대껴서 일을 하는 직종이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에게서 오는 스트레스가 많이 쌓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스트레스가 신규 간호사라던가 만만해 보이는 상대에게로 전해지는 잘못된 경우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새 병원에 들어가서 프리셉터에게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있을 때였습니다. 저의 프리셉터는 정말 친절하시고 좋으신 분이셨고, 지금까지도 제가 이용하고 있는 경력이 되어야 알 수 있는 팁들도 많이 알려주셨습니다. 어느 정도의 오리엔테이션이 지나고, 그 날은 프리셉터가 아닌 제가 처음으로 직접 나이트 간호사에게 교대 리포트를 주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첫 연계 리포트 시간이라 두근거리고 떨리는 마음을 안고 널싱 스테이션에 갔는데, 뭔가 이미 아니꼬와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경력이 20년 넘는 간호사에게 제 환자들 리포트를 주게 되었습니다. 여섯명의 환자들을 하나하나 SBAR 에 맞춰 리포트를 주는 도중에, 자꾸 제가 공유하는 중요한 lab value 나 test results 같은 것들은 안 듣고, 방문하는 가족이 있는지, 몇 명이나 오는지, 그 가족들의 연락처는 아는지 등을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질문들에 저는 말이 막혔고, 그 간호사는 이런것도 모르냐며 다른 사람들도 다 들릴 정도로 짜증을 냈습니다. 가뜩이나 이미 긴장최고조 상태였던 저는, 그 순간,

 

'아 그런 정보도 기본으로 알고 있어야 하는거구나, 내가 그 생각을 못했네' 

 

라며 자책을 했고 몇번이고 사과를 했으며, 그 날 나머지 리포트가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초긴장한 상태로 인계를 끝냈습니다. 퇴근길에 저는 자신감이 땅 끝까지 떨어진 상태였고, 그렇게 '중요한 정보'를 몰랐던 제 자신을 자책 하며 시무룩해있었습니다. 그 때 옆에서 그 상황을 다 보았던 프리셉터가 저에게 해 준 말이 있습니다.  

 

"가족 연락처 같은거 컴퓨터 몇 번 클릭하면 다 있고, 방문자가 몇 명 오는지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닌데 저 간호사는 또 그런다. 항상 새 간호사가 올 때마다 그러더라. 전혀 신경쓰지마. 너가 잘못한거 아니야."

 

     지금 똑같은 상황이 닥친다면, 내가 각 환자가 방문객이 몇 명 오는지 세고 앉아있을 정도로 한가할 줄 아냐고, 연락처는 컴퓨터에 있으니까 보라며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것을 신규 간호사로써 긴장을 잔뜩 하고나니 무슨 커다란 죄를 진 사람처럼 느껴진 것입니다. 제 프리셉터가 저에게 말한것처럼 그런 사람들은 무슨 일이 없어도 일부러 일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고,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신규 간호사들을 까야 자기의 존재감이 드러난다고 생각하는, 자존감 낮은 사람들니다. 그러니 일부러 긁으려고 하는 말들을 듣고, 절대 자책하지 마시고, 저 불쌍한 사람이 뭐가 또 꼬여서 저러나 라고 여유있게 생각해보세요. 

 

 

2. 친절하게, 하지만 내 할 말은 확실히 하기

 

     프리셉터에게 그 간호사에 대해서 어느 정도 듣고난 후, 저는 제가 그렇게 큰 잘못을 한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알면 좋은 정보들이지만, 풀코드 환자들을 케어 하는데 우선시 되는 최고로 중요한 정보들은 아니었으니까요. 그 이후로도 몇 번 그 간호사에게 연계 리포트를 줄 상황이 있었는데 그 때마다 자책은 안하더라도 은근히 스트레스가 쌓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다시 그 간호사에게 인계 리포트를 주고 있는데, 저에게 이 환자들의 총 I&O 가 어떻게 되냐며 질문을 했습니다. Fluid restriction 이 있는 환자들도 아니었고, 신장에 문제가 있는 환자들도 아니었고, 따로 의사가 I&O 에 신경쓰라는 말도 없었던 independent 한 환자들이었는데, 갑자기 저렇게 훅 들어온 질문에 저는 '아 날 또 시험해보려는 질문이구나.' 라고 느꼈습니다. 그 상황에서 저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따로 I&O 오더가 필요하거나 있는 환자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딱히 재진 않았는데 어떤 부분에서 I&O 가 중요하다고 느꼈나요? 제가 중요한 부분을 놓쳤으면 고쳐야죠."

 

      그러자 그 간호사는 딱히 대답을 하지 않고, 자기가 알아야 할 중요한 사항들이 더 있냐며 저에게 물어봤습니다. 대답을 왜 안하냐며 말꼬리를 잡고 더 늘어질 수 있었으나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미 그 간호사에게 저는 이제 '할 말 할 줄 아는 간호사' 로 분리되었고, 실제로도 그 이후로는 전혀 시비를 걸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갑자기 친근하게 행동을 해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답니다. 이런 사람들은 경력있는 간호사로써 신규들을 테스트를 한답시고 찔러보는 경우들도 많기 때문에 제대로 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3. 직접 물어보기

 

     제가 응급실로 과를 바꿔서 내려가기 직전 제가 좋아하는 의사선생님과 대화를 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워낙 바쁘신 선생님이라 복도에서 짤막하게 대화를 나누며, 응급실에 내려간다라는 소식을 전했는데 그 분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응급실은 워낙 바빠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거야.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에 서로 짜증을 내고 날카로울 때가 있는데, 

절대 그 상황에 사로잡히지마 (Do NOT get caught up in that moment). 너를 향한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야 (It's nothing personal). "

 

     제가 저 날 저 선생님께 저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저는 아마 응급실에서 6개월도 버티지 못했을 것입니다. 응급실에서 일한다고 하면 "넌 짐승이다. 넌 정말 종이 다르구나. (You are an animal. You are a different kind.)" 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응급실은 특화된 사람들만 살아남는다는 자부심이 굉장히 큰데, 그만큼 모든 것이 빠르고 심각하게 진행되는 곳이기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이고, 그러다보니 서로에게 말이 예쁘게(?) 나오기가 힘듭니다. 당장 환자의 생사가 달려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아 미안한데, 저기 가서 내가 필요한 crash cart 좀 갖다 줄 수 있겠어?" 라고 말할리가 없죠. 그런 상황을 다 이해하는데도 유독 저에게만 쌀쌀맞은 간호조무사 한명이 있었습니다. 분명히 아무것도 안 하고 다른 사람과 수다떨고 있는 걸 보고 일적인 무언가를 부탁해도, 자기는 바쁘다며 갑자기 다른 곳으로 가버리고, 자꾸 제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그렇게 하는게 아니라며 훈수를 두는 것입니다. 저보다 응급실에서 오래 일했기에 좋은 충고로 감사히 받아드리려고 해도, 다른 간호사들과 일 할 때는 그렇게 열심히 일개미가 따로 없는데 꼭 저와 일을 할 때만 태도가 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어느순간 이건 진짜 개인적인 감정이다 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뭘 크게 잘못한 일은 없었던 것 같은데 뭐가 문제인 걸까, 어떻게 풀어야하나, 고민이 되었습니다. 제 예전 포스팅 "미국 병원 취업 면접 질문과 팁_2" 에서 알수있듯이, 미국 사회는 동료와의 갈등이 있을 때 먼저 당사자들끼리 이야기 하는것을 원합니다. 아직 응급실 신규에 일도 손에 잘 안 잡히는데 이런 것까지 신경써야하나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초반에 정리하지 않고 넘어가면 더 큰 문제가 생길 수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평소와 같이 정신없이 바쁘던 어느 날, 환자는 계속 들어오는데 제가 몇 번을 부탁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스탭과 수다를 떠느라 방 및 임시침대 정리들이 하나도 안되어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부탁을 하고 돌아서는 저에게 그 간호조무사는 옆에 있던 자기 동료에게 키득대며 "아니 자기가 할 것이지 왜 자꾸 나한테 난리야" 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폭팔할 것 같은 감정을 억누르며 그 간호조무사에게 돌아가서 "Can we talk privately?" 라고 물었습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창고 안으로 들어온 그 간호조무사에게 저는 미쳐날뛰는 심장을 누르며 최대한 침착하게 말을 꺼냈습니다. 

 

"우리 지금 같은 팀으로써 함께 일해야 하는 상황인데, 나는 너가 날 같은 팀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방금도 내가 너한테 부탁했을 때 왜 그런식으로 말한거야?

내가 뭐 잘못한 게 있니? 내가 마음에 안 드는게 있으면 지금 말해줬으면 좋겠어. 내가 잘못한 거라면 고쳐야지. 나랑 그냥 일하기 싫은거면 매니저한테 부탁해서 나랑 더 이상 안 엮이게 해달라고 하면 되고."

 

     예전 상황들까지 이야기하거나 "너"라는 단어로 문장을 시작하면 제 의도와는 다르게 공격적으로 들릴 수도 있고, 이 친구가 방어적으로 변할 것 같았기에 저는 일부러 제가 이해를 못하는 상황이니 나를 이해시켜달라는 식으로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그 간호조무사는,

 

"딱히 그런건 아니야. 그런데 나는 내 할 일이 있는데 너가 자꾸 똑같은 말을 반복하니까 나는 그게 짜증난거지."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너가 분명히 딴 짓을 하고 있는 걸 봤고, 금방 하면 될걸 빠릿빠릿하게 못하고 있지 않냐는 말이 혀끝까지 나왔지만, 그러다가는 감정적인 싸움이 될 것 같아서 그럼 앞으로 내가 필요한 건 한번만 말하겠다며 마무리를 했습니다. 그리고나서 그 간호조무사의 태도는 180도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 그 간호조무사에게 저는 '무시해도 아무 말 못하는 신규 간호사' 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힘든 상황을 직접 마주해야한다는건 누구나 즐기는 상황이 절대 아니지만, 계속 태도나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 당사자에게 직접 (절대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가 아닌 1:1로) 물어보세요. 그렇게 대놓고 물어본다는 거 자체만으로 상대방은 자신의 행동을 다시 돌아볼 수 있게 될 겁니다. 

 

 

4. 실력을 키우기

 

     일을 하다보면 어느순간 예전에 어려웠던 것들이 훨씬 쉽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전 아직도 생각나는 첫 IV... 건장한 20대 남성에 핏줄이 터니켓 없이도 튀어나와있는 팔뚝이었는데, 그걸 못 잡았습니다. 옆에서 보고 있던 IV 전문 간호사의 비웃음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9년이 지난 지금은 유닛에서 아무도 못 잡는 IV를 잡을 정도의 실력이 되었습니다. 실력을 키우면 자신감이 생깁니다. 실력이 있고 자신감이 있는 사람을 무시한다거나 조롱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감이 생기면, 여유가 생깁니다. 상대방에서 말도 안되는 말을 던졌을 때, 나를 자책하는게 아니라, 뭐 그딴 식으로 이야기하냐 라고 되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거죠. 물론 처음 시작할 때부터 전문가의 지식과 실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그래 나 몰라서 배우러 왔다' 라는 태도를, 실력을 키운 후에는 '얼마나 꼬이면 저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걸까' 라는 연민을 가지며 자기 자신을 옳아매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포스팅을 쓰고나니 딱히 '미국' 사회에서 살아남기보다는 스트레스 받지 않고 사회생활을 하는 법이라는 포스팅이 더 잘 맞을 뻔 했네요. 전 사실 처음에 이런 상황들이 왔을 때 내가 미국인이 아니라서 무시하는 건가 라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아마 실제로 그래서 절 무시하거나 시험하려는 사람들도 있었을 거예요. 어쨌든 제일 중요한 점은 가해자가 어떤 이유로 나를 깔아뭉개려고 해도, 내가 소중한 나를 잘 보호하는 법을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스트레스 받지 말고 그 누구보다 나를 아끼는 사회 생활을 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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