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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간호사 멘토 소피아입니다. 2020년을 코로나 바이러스로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벌써 날씨가 쌀쌀한 10월 말입니다. 제가 있는 미국 뉴욕은 3월초부터 슬슬 코로나바이러스 조짐이 보이더니 3월 중순을 시작으로 기하급수적으로 확진자가 늘다가, 4월에 정점을 찍고 5월부터는 케이스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뉴욕 외 다른 주들은 뉴욕을 보고도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여름 7-8월 중에 피크를 찍고, 지금도 다시 2차 웨이브 (Second wave) 가 온다며 우려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미 다 알고 계시겠지만 국제 여행 뿐만이 아니라 미국 내 여행도 최대한 자제하라고 권고가 내려왔고, 여름 휴가는 물론,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모임도 자제를 하는 상황입니다. 워낙 겨울이 길기 때문에 여름을 정말 좋아하는 미국 사람들은 5월말에 있는 현충일 (Memorial day), 7월 초에 있는 독립기념일 (4th of July), 그리고 9월 초에 있는 노동절 (Labor Day) 주말에 주변 사람들이 다 같이 북적북적 모여서 바베큐 파티를 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계속해서 큰 모임은 가지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현재 뉴욕주는 50명 미만의 그룹 활동은 허용 상태) 미국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다음으로 손꼽아 기다리는 할로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10월 31일, 해가 서서히 질 무렵부터 아이들은 자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로 분장을 하고, 호박 바구니를 들고 이웃집들을 찾아다니며 노크를 합니다.
"Trick or Treat!" ("골탕 먹을래 아님 대접 할래? = 사탕 줄래?")
아이들이 1년동안 먹을만큼의 군것질거리를 모아올 생각에 설렐 동안, 어른들은 각자의 집 앞을 으시시하게 꾸미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분장해올 귀여운 아이들의 모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2학년까지 마치고 온 저는 미국에 온 첫 해, 한복을 입고 또래 친구들과 딱 한 번 이 trick or treating 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보통 만 2-3살부터 10살 이전의 아이들이 아이들이 사탕과 초콜렛을 얻기 위해 trick or treating 을 많이 하기 때문에, 저희가 노크를 할 때마다 귀여운 아이들을 볼 생각에 활짝 웃으며 문을 열고 나오시던 집 주인분들이, 너무나 큰 십대 청소년들이 문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시고는 당황하셨던 표정들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답답한 마스크도 계속 써야 하고, 학교도 못 가고,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뛰놀지도 못하며 이미 너무나 많은 것을 희생한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이 할로윈을 어떻게 하면 최대한 안전하게 보낼 수 있을지, 아예 trick or treating 자체를 하러 밖에 나갈 것인지, 간다면 어딜 갈 것인지가 요즘 미국 학부모들의 최대 관심 토픽입니다.
예전 포스팅 (미국 병원 휴가 및 공휴일 제도) 에서 말씀드렸듯이, 미국 병원에서는 간호사가 공휴일에 일을 하게 되면 보통 시급의 1.5배를 받게 되는데요, 많은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할로윈은 안타깝게도 공식 휴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보통 어린 아이들이 있는 간호사들이나, 할로윈 파티 계획이 있는 간호사들은 할로윈 당일에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병동 담당 매니저 입장에서는 공식 휴일만큼이나 스케줄 정리에 중요한 날입니다. 전 12월 31일이나 새해 이외에는 딱히 공휴일에 일하는 것에 문제가 없어서 병동이 필요한 공휴일에 일을 하곤 했었는데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2015년 제가 소아병동에서 일했을 당시 있었던, 제가 평생 잊지 못할 이야기를 공유할까 합니다.
제가 예전에 일했던 병동은 18세 미만 환자들을 케어하는 소아 병동이자, 소아 환자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정신과 병력이 없는 med-surg 환자들 담당, 그리고 뇌전증 환자들이 새로운 증상이 생겼을때나 복용하는 약의 양을 바꿀때마다 입원해서 몇일 동안 뇌파검사를 받을 수 있었던 병동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빌리루빈 수치가 높아서 광선 요법을 받는 신생아 환자와 바로 옆 병실에 있는 90대의 호스피스 환자를 함께 케어하는 등 다양한 환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10월 30일과 31일을 일하게 된 저는 30일 퇴근 하기 한 시간 전, 만 6세의 소아 환자를 받게 되었습니다. 응급실에서 올라온 천식 환자였는데 집에서 아무리 inhaler 를 써도 상태가 나아지지가 않아서 입원이 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입원 소속을 마치고 퇴근을 하였고, 제 환자들을 받은 밤 근무 간호사에게 난 내일도 일하니까 이 소아 환자 포함, 내 환자들을 그대로 나에게 인수인계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다음날인 31일 오전에 출근 후 전 그 전 날 케어했던 환자들을 그대로 인수인계 받고, 어제의 그 소아 환자는 네시간마다 네뷸라이저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보고도 받았습니다. 환자 부모님께서 혹시 할로윈인만큼 아이가 낮에 퇴원을 할 수 있는지 여쭤보셨고, 소아과 선생님도 될 수 있으면 낮에 퇴원을 시켜주고 싶어하셨지만, 천식 때문에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한 아이가 약간의 탈수도 있는 등 아이의 상태가 확실히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하루 더 병원에서 입원해있는 걸로 결정이 났습니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아이는 실망한 표정을 지었지만 떼를 쓰거나 울지도 않고 매우 성숙하게 그 상황을 이해했습니다.
오후 다섯시쯤, 소아 환자의 아버지가 저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저희 아이가 정말 할로윈을 너무나 기대하고 기다려와서 그런데...
혹시 집에서 미리 준비해놓은 의상이라도 가져와서 병원에서 병원복대신 입고 있어도 될까요?"
너무나 안타까웠던 저는 절대 문제가 되지 않으니 언제든 다녀오시라고 말씀드렸고, 그 아버님은 정말 감사해하며 아들이 어머니와 병실에 있는 동안 집으로 의상을 가지러 가셨습니다. 그 당시 저희 병동에 소아 환자는 그 아이 하나였기에 너무나도 안타까운 마음에 전 동료들과 함께 이 아이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게 없을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동료 간호사는 우리가 병원 내 자판기에서 초콜렛이랑 사탕을 사서 아이에게 주는게 어떨까 의견을 냈습니다. 간호사 스테이션에 앉아서 병동을 둘러보면서 그 이야기를 듣던 저는 각 병실의 문들이 보였습니다.
"그럴게 아니라 이 아이가 여기서 아예 trick or treating 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자!"
다행히 병동이 꽉 찬 상태가 아니라서 몇몇 빈 병실이 있었고, 저희는 각 빈 병실마다 한명씩 들어가 있고, 그 아이가 병실 문을 노크해서 trick or treat! 을 외치면 문을 열어서 군것질을 나눠주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퇴근 전이었던 병동 매니저도 계획을 듣고는 너무나 좋아하셨고 저희와 함께 하였습니다.
저희는 먼저 십시일반 돈을 모아 병원 내 자판기들에서 최대한 많은 양의 초콜렛과 사탕을 구매하였습니다. 의상을 가지러 간 환자의 아버님께 전화를 드려서 혹시 호박 바구니도 준비해놓으셨으면 그것도 가져오시라고 말씀드렸고, 다른 동료 간호사는 현재 우리 병동에 비어있는 병실들을 확인하며 누가 어느 병실에 들어가 있을건지를 정했습니다. 갑자기 병동의 분주해진 분위기를 느낀 다른 입원 환자분들이 무슨 일이냐고 여쭤보셨고, 저희가 현재 상황과 계획을 말씀드리자, 많은 환자분들이 너무 귀여운 계획이라며 자기도 참여할 수 있냐며, 자기 병실에도 꼭 그 아이가 와서 노크를 해주길 바라셨습니다. 저는 혹시나 모를 상황을 위해, 전염 위험이 없고, 혼자서 도보가 가능하신 환자분들 (신장결석이나 맹장염 등) 과만 함께 하는 걸로 상황이 맞지 않는 분들께 양해를 부탁드렸고, 그 분들도 충분히 상황 이해를 해주셨습니다.
곧 환자의 아버지가 귀여운 해적 의상을 가지고 병동에 돌아오셨고, 저희는 그 소아 환자 몰래 저희의 계획을 부모님께 공유하였습니다. 그 아이의 부모님께서는 너무나 놀라워하고, 감사해하시며 아이에게 서프라이즈로 알려주고 싶다고, 우선 병원복 대신 해적 의상만 입고 할로윈을 기념하는 걸로 이야기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인수인계를 하는 교대시간인 오후 7시에 전 밤 근무 스탭들에게도 이 계획을 공유하였고, 덕분에 더 많은 스탭들이 참여를 원하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의 담당 간호사였던 저는 스케줄된 네뷸라이저 치료을 위해 그 아이의 병실을 방문했고, 그 덕분에 누구보다 먼저 너무나 귀여운 꼬마 해적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너무 멋있는 해적이다! 호박 바구니도 있네?"
"네...근데 trick or treating 못해서 너무 슬퍼요..."
"흠... 왜 여기서는 trick or treating 을 하지 못할꺼라고 생각하는거야? 이 네뷸라이저 받고 한번 돌아다녀볼까? 혹시 모르잖아~"
그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네뷸라이저 치료를 금방 끝내고는, 자기 키의 두배도 넘는 링겔대를 끌고 저를 따라나섰습니다. 미리 표시된 병실 문앞에 선 저는 아이에게 문을 두들겨보라고 물었습니다. 호기심 반, 의심 반의 눈빛으로 절 보던 그 아이는 조막만한 손으로 살살 병실 문을 노크하며, "...Trick or treat" 을 말했습니다. 너무 조용히 말했는지 안의 직원이 듣질 못해서 문을 안 열었고, 전 실망한 표정으로 서 있는 아이에게 한번만 더 크게 해보라고 부탁했습니다.
"(Knock Knock) Trick or treat...!"
그러자 문이 활짝 열리며 함께 일하는 간호조무사가 나타났는데 어디서 났는지 루돌프 빨간코를 코에 달고는,
"어머 이게 누구야~ 완전 멋진 해적아저씨네! 여기 초콜렛 있어요~"
라고 말하며 깜짝 놀라 얼어붙은 아이의 호박 바구니에 초콜렛을 한 주먹 가득 넣어주었습니다. 뒤에서 영상을 찍으며 이 상황을 지켜보던 그 아이의 부모님도 깔깔 웃으며 재미나하셨고, 상황 파악이 된 이 아이는 그제서야 눈을 반짝이며 빨리 다음 병실에 가보자고 저를 재촉했습니다.
"(KNOCK KNOCK) TRICK OR TREAT!"
한껏 자신감이 붙은 우렁찬 목소리와 커다란 노크소리에 구경하고 있던 모든 직원들과 환자들 모두들 함박 웃음을 지었습니다. 각 병실에는 언제 준비했는지 머리띠를 한 동료 간호사, 마스크에 고양이 수염을 그려넣은 동료 간호조무사, 머리를 우스꽝스럽게 묶은 환자 등등 많은 분들이 이 아이의 할로윈을 위해 행복한 노력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참 전체 병동을 다 돌고 난 후에 아이의 호박 바구니는 가득 찼고, 얼굴에서는 방실방실 미소가 떠나질 않았습니다.
"This is the BEST Halloween EVER!"
퇴근시간은 훌쩍 지났지만 너무나 행복하게 오늘이 자기 인생 최고의 할로윈이었다고 외치며 자신의 병실로 돌아가는 아이의 모습에 전 스트레스가 다 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아이의 부모님도 정말 행복해하고 몇번이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셨습니다.
(병동을 반 정도 돌다가 아이 부모님께서 찍어주신 기념사진)
퇴원 후 그 환자의 부모님은 병원으로 감사 이메일을 보내셨고, 그 덕분에 저희 병동의 이야기는 모든 병원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회자가 되었습니다. 직접적인 환자 의료상태의 간호 케어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넘어 무언가 특별한 것을 지켜주고 공유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미국 간호사로써 진정하게 할로윈을 즐기는 방법 아닐까요? 😊
할로윈에 관련된 어떤 재밌는 이야기라도 마구 공유해주세요. 로그인 없이도 남기실 수 있는 댓글과 공감 하트는 언제가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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