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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간호사 멘토 소피아입니다. 주변에서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 그건 그저 일이 아니라 즐길 수 있게 된다.' 라는 말, 많이 들어보셨죠? 전 개인적으로 저 말이 너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끊임없이 머리와 몸을 쓰게 되다보면 지치게 되는건 당연한데, 저런 말로 인해서 '아 내가 이 일을 진심으로 좋아하는게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까지 할 수 있게 되는거죠. 사실 내가 이 일 자체를 좋아하는 것은 변함이 없지만, 주변의 다양한 상황과 사람들에 엮이게 되면서 나의 컨트롤을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 충분히 있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내 자신을 갉아먹을 정도로 일을 하거나 자책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번아웃 증후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제가 처음 미국 간호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주변에서 제일 많은 조언 중의 하나는 '살살해라, 그러다가 곧 다치고 지친다' 였습니다. 새내기 시절의 저는 그 말을 마음속에 새길 생각조차 안했어요. 지금까지 내가 배워온 지식들을 이용하면서 사람들을 도와주고, 거기에 돈까지 받는다니. 사회생활을 하는 내가 너무 멋지고 완벽해보였는데 살살 일하라는 말이 귀에 들어올리가 없었죠. 그 당시가 딱 '허니문 단계' (Honeymoon Phase) 였던거였습니다.
제가 응급실에 일하고 있을 당시 20대 후반-3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새 것처럼 보이는 정장에 반짝거리는 구두를 깔끔하게 차려입고, 서류가방을 든 상태로 응급실에 들어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 날 저는 응급실 뒤편의 응급 정신 병동쪽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너무나 멀쩡한(?) 모습으로 저에게 다가오는 모습에 저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How can I help you?)"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분은 자신이 지금 출장을 가야해서 3시간 내에 공항을 가야하는데, 지금 급하게 할 일이 있어서 이 곳에 잠깐 들른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원래 이 곳은 아무나 못 들어오는데 이 쪽까지 어떻게 들어오셨는지, 혹시 누구 보호자이신지 그 남자분께 다시 물어보는 순간, 뒷쪽에서 어떤 여자분과 함께 걸어오던 제 동료 간호조무사가 제가 대화하고 있는 이 분이 9번 방에 들어갈 환자라고 저에게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알고보니 뒷쪽에서 같이 오신 여자분은 이 환자분의 어머니셨고, 자꾸 시계를 확인하며 비행기 시간을 얘기하는 이 환자분 대신 저에게 이 분이 응급실에 오게 된 이유를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이 분은 뉴욕에서 매우 유명한 회사에서 촉망받는 인재였는데, 원래 일을 잘하기도 했지만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일에 너무 빠져살다보니,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것은 물론 주말에도 일하며 가족과의 시간은 커녕 제대로 된 휴식시간도 갖기 못하고 지냈다고 합니다. 어머니께서는 뉴욕 뿐만이 아니라 세계에서 인정받는 회사에서 승승장구 해가는 아들을 보면서 처음엔 자랑스러웠지만, 점점 너무 일에만 사로잡혀있는 모습에 걱정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아들이 심각한 워커홀릭으로 지내던 도중, 회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출장이 잡혔고, 출장 당일 분명히 회사에는 공항을 간다고 나갔는데, 출장지에서 아무도 도착을 안했다며 회사로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알고보니 아들이 비행기를 탄 기록도 없고, 연락이 전혀 안되며 실종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아들이 갑자기 실종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부모님은 만사를 제쳐두고 몇날 몇일을 뉴욕 곳곳을 쥐잡듯이 아들을 찾아 헤맸고, 비가 엄청 내리던 어느 날, 잔뜩 헝클어진 머리에 서류가방을 품안에 꼭 안고 초점없는 눈으로 뉴욕 길거리를 방황하던 아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버지가 바로 달려가서 아들을 품에 안고 네가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말하자, 이 아들은 아버지를 못 알아보고 그저 "시카고에 가야돼요. 굉장히 중요한 출장인데 공항 가는 길을 못찾겠어요. 시카고에 가야해요. 시카고에 데려다주세요." 라는 말만 반복했다고 합니다. 무조건 일 먼저, 그 누구보다 완벽하게 이 일을 해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결국 자신의 멘탈을 놓아버린 것입니다. 그 사건 이후 일을 그만두고, 필요한 정신과 치료를 통원치료 형식으로 받고 있었는데, 가끔 증상이 심해지면 입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병원에 온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분은 번아웃보다 훨씬 많이 나아간 상태이지만, 그냥 '일 하다보면 누구나 다 받는 스트레스 정도'로 나에게 온 번아웃을 가볍게 치부하다 보면, 그 상태가 점점 심해져서 내 자신이 통제를 못 할 정도로 나의 건강이 안 좋아질 수 있습니다. 심지어 작년에는 세계 보건 기구 (World Health Organization) 도 번아웃이란 증상을 공식적으로 만성 직장 스트레스에서 오는 증후군으로 규정하였습니다.
1) 에너지 고갈이나 지친 상태
2)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정신이 멀리 떨어져있거나, 혹은 부정적이거나 시니컬한 상태
3) 일의 효율성이 떨어진 상태
WHO 는 직장으로 인해 위의 세가지 상태를 겪는다면 번아웃 증후군이라고 규정했는데요, 질병으로 구분된 것은 아니지만, 그저 사회생활 하면 다들 이 정도는 겪는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절대 가볍게 생각할 부분이 아니었고, 세계 보건 기구에서 제대로 규정할 정도로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한국에서도 2015년 안전 관리 공단에서 지은 "번아웃 증후군 간이 테스트" 가 있다고 합니다.
전혀 아니다: 1점
약간 그렇다: 2점
그냥 그렇다: 3점
많이 그렇다: 4점
아주 그렇다: 5점
으로 총 17개 문항에 점수를 매겨보세요.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님의 말에 따르면 총 85점 만점에 65점 이상이면 위험한 상태라고 합니다. 65점 이상이면 상담을 받는 것을 적극 추천하셨고, 65점이 안된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높아지지 않도록 일을 하면서 오는 스트레스를 잘 조절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직장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어떻게 잘 조절할 수 있을까요?
1.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나 자신에 대해서 잘 알기
나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계신가요? 내가 좋아하는 음식, 내가 좋아하는 음악 말고 내가 어떤 상황에 있을 때 다른 때보다 더 스트레스를 받는지 잘 알고 계신가요? 예를 들어 저는 응급실에서 간호사로 일하면서 '규칙' 이 완전히 사라질 때 제가 그 어떤 것보다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간호사로 일을 하면서, 특히 응급실에서 일하면서 제일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는 '유연성' 입니다. 언제 어떤 환자가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정해진 규칙만을 언제나 따를 수 없다는 것은 저도 알고 있고, 당연히 현실성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할 일이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도와줬고, 설사 그 동료는 저를 도와주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저에겐 그것이 그닥 중요한 사안이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긴급 상황이 아닌데도 누군가의 편의를 위해서, 혹은 그 규칙이 좀 까다로워서 순간순간 규칙을 바뀌는 것을 보고 겪은 순간, 의료상태가 심각한 환자를 받았을 때보다 더 스트레스 받는 제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응급 의학을 많이 좋아했지만, 저런 상황 외에도 저를 점점 더 갉아먹는 상황들이 많이 생겨났고 (밑 카테고리의 예시 상황 포함), 더 이상 이 곳에 계속 있으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저는 응급실을 떠났습니다.
2.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하지 말기
저희 병원 응급실은 주변 병원들 중에 가장 바빴고, 그만큼 힘들었기에 이직률 (turnover rate) 이 상당히 높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 바쁘거나 점심시간인 경우에는 저 혼자 12명이 넘는 환자를 상대해야 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였습니다. 이미 환자의 병명을 진단되고, 몇일간의 상태를 아는 상황이라면 환자들의 케어가 좀 더 쉬웠을지 모르지만, 응급실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병명 진단을 받고 입원을 하거나 퇴원을 하기 전까지 모든 가능성을 열고 환자를 봐야하기 때문에 (단순 두통으로 들어왔을지라도 뇌출혈 가능성, 복통으로 왔을땐 단순 소화 불량부터 긴급 수술이 필요한 퍼포된 맹장염 가능성) 일분 일초 예민하고 날카롭게 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작은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완벽하게 일을 해야 한다는 제 마음가짐 덕분에 일을 잘한다고 주변에서 인정을 받았고, 제 환자들은 질좋은 케어를 받았지만, 점점 "보리간호사는 일을 잘하니까 이 정도는 더 할 수 있어" 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중환자이나 어려운 환자들이 제 케어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중환자를 담당시킬거면 중환자실처럼 최대 2명의 환자만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였으나, 공석이 많은 응급실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어려웠습니다. 더 이상 제 몸과 간호 면허를 희생하면서까지 힘들게 일을 하고 싶지 않았기에 저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날수 밖에 없다는 말을 하며 붙잡는 매니저들을 뒤로 하고 응급실을 떠났습니다. 내가 너무 힘든데 끙끙 앓으면서까지 붙잡고 지내다보면 번아웃이 그 어느때보다 빨리 오게 되겠죠.
3. 나를 위해 '정신건강의 날' 을 쓰기
제가 처음 직장생활을 했던 곳은 외래 소아과였는데, 네 명의 소아과 선생님들과 함께 일을 했습니다. 그 중에 한 분은 굉장히 솔직하고 유머러스하신 분이셨는데, 두 달에 한번쯤은 꼭 주중에 하루나 이틀 정도 오프를 신청하셨습니다. 어디 여행가시냐 물어보니 너무나 산뜻하게 웃으시면서 "No, it's my mental health day😉"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 때는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잘 안됐는데, 이제와보니 정말 현명하게 일 스케줄을 짜고 계신 거였습니다. 한국도 연차와 월차가 있듯이 미국도 유급휴가날이 있습니다. (참고포스팅: 미국 병원 휴일/유급 휴가 제도) 출근 전 날, 혹은 그 당일 날 새벽, 도저히 일을 갈 수 없을 정도로 스트레스 받거나 몸과 마음이 힘들면 call out 을 합니다. 처음에는 제가 일을 안 나가기 때문에 동료들에게 일이 더 많이 주어지는 것이 걱정이 되어서 나에게 당연하게 주어진 권리인데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일을 계속 하다 보니, 제가 만약 정말 몸과 마음이 힘들지만 꾸역꾸역 일을 나간다 한들, 제대로 일을 하지도 못할 뿐더러 실수가 발생할 가능성도 크고, 오히려 동료들이 제 분위기를 살피느라 더 불편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하루 일을 빠져도 사생활이기 때문에 미국 동료들은 그저 예의상 가볍게 이제 좀 괜찮아졌냐며 인사를 건네고, 상사들은 부담가질까봐 물어보지도 않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권리인 유급 휴가, 월차, 연차 부담감 없이 꼭 챙겨쓰는 것이 나의 정신 건강에, 번아웃 예방에 중요합니다.
4. 가벼운 운동이나 명상 & 건강한 식습관
일하는 것도 힘들어죽겠는데 무슨 운동이며 스트레스 받아죽겠는데 뭔 샐러드냐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절대 매일 운동을 하거나 매일 건강식을 먹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직장생활과 완벽하게 나를 떨어뜨려놓고 나를 위해서 가벼운 운동이나 명상을 하고, 스트레스 받는다고 무조건 달거나 자극적인 음식을 찾기보다, 건강한 식습관을 습관화하다보면 몸도 가벼워지고, 스트레스도 더 해소가 잘 됩니다. 특히 힘들었던 날 퇴근 후의 맥주 한잔, 야식으로 먹는 떡볶이는 놓을 수 없는 소소한 행복이지만, 매일매일 퇴근 후 음주 혹은 자극적인 음식으로 배를 채우게 되면 몸이 더 힘들어진다는 점 잊지마세요.
5.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 정확히 인지하고 내려놓기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모든게 신이 나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모든것을 했습니다. 내가 할 일은 당연히 잘 끝내고,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겐 아낌없이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작은 문제라도 생기면 저를 한없이 자책했습니다. '내가 잘 몰라서 그런거야, 내가 더 잘했어야 했는데,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하지...' 어느새 10년간의 사회생활을 하고나니 전 제가 아무리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해도, 제가 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내가 다 짊어지고 해야한다는 마음가짐을 버리고나니 마음가짐이 훨씬 가벼워졌고, 내 자신을 먼저 돌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40분간 코드를 진행했어도 돌아가시는 분이 계시고, 내가 아무리 친절하게 대해도 소리를 지르며 나에게 욕을 해대는 환자가 있습니다. 나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내가 원하는 상황으로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런 상황들에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 상황의 제약들을 충분히 인지하시고 마음을 내려놓으셔서 번아웃을 방지하세요.
미국에서 간호사로 일하면서 제일 좋은 점 중에 하나는 다양한 직군들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한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파고들은 분들도 정말 존경하지만, 충분히 빠져나와서 내 자신이 더 건강해질 수 있는 상황에도 변화가 무서워서 못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내 앞에 있는 이 상황이 최선인 것 같아도, 내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더 나은 상황들이 많이 있다는 점 잊지마세요. 특히 계속 똑같은 것을 반복하는 것이 싫증이 난다면 travel nursing 등 다른 간호사 직군을 알아보시는 것도 도움이 많이 되실 겁니다. (참고 포스팅: 다양한 미국 간호사 직업들 (장점&단점)). 우리 모두 내 자신을 최선으로 두고, 아껴주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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