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간호사

간호사로서 마주한 삶과 죽음의 순간들

간호사 멘토 소피아 2020. 10. 25.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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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간호사 멘토 소피아입니다. 간호사가 되기로 결심을 하고 간호대학교를 다니면서도 저는 제가 얼마나 다양한 삶과 죽음의 순간들을 목격할 지 전혀 예상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당시 저에게 간호사란 왠지 일반병동에서 환자들을 케어하며 건강한 상태로 퇴원을 시키는 그런 역할이 전부였습니다. 10년차 간호사로 지내면서, 특히 응급실에서 일을 한 후로, 저는 죽음이란, 행복하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지내다가 나이가 들어서 세상과 이별을 하는 것이 아닌, 언제 어디서나 누군가에게나 전혀 예상치 못한 형태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로 인해 하루 하루 주어지는 삶이 당연한 것이 아닌 정말 행운이자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순간순간 후회없는 삶을 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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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셀 수도 없이 많은 삶과 죽음의 순간들을 마주했지만 그 중에 간호사로서 특히 기억에 남는 상황과 환자분들 이야기를 공유해볼까 합니다. 제가 마주한 새 삶의 상황도 있지만, 혹시 죽음을 두려워하시는 분들은 이번 포스팅은 읽기 힘드실 수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1. 처음 맞이한 "내 환자"의 죽음

 

     일반 병동에서 일을 시작한지 반 년 정도가 지났을 때 저는 호스피스 환자를 맡게 되었습니다. 80대 남성 환자셨는데 이미 예전부터 존엄사 서류가 있으셨고, 그저 편하게 보내드리기 위해 가족들이 모르핀 드립만 동의를 한 상태였습니다. 호스피스 환자셨기 때문에 2주 정도 병동에 계셨어서 제가 일할 때마다 그 분 담당을 맡곤 했습니다. 그 분은 네 명의 자녀들이 있으셨는데, 그 중에서 그 환자분의 건강 대리인이셨던 둘째 따님이 매일 오전 10시쯤 병문안을 오시곤 했습니다. 어떤 날은 홀로, 어떤 날은 형제자매들과 같이 오곤 하셨는데, 어느 날 병동에 전화를 하시더니 평소보다 30분 정도 늦게 도착하실 것 같으시다며 아버지 상태가 어떤지 여쭤보셨습니다. 바이탈 사인에 전혀 변화가 없어서 어제와 변함없는 상황이시다, 천천히 오시라 말씀드렸는데, 그 전화를 끊자마자 10분만에 환자분은 숨을 거두셨습니다. 너무나 당황한 저는 다시 전화를 드리려고 했지만 운전하실텐데 위험할 수도 있으니 오시자마자 말씀 드리라는 수간호사의 조언을 따라 먼저 담당 의사에게 연락을 드리고, 따님이 병동에 들어오시자마자 아무도 없는 곳에서 상황을 설명하며 사과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따님은 너무나 인자한 미소로 절 바라보시며 지금까지 아버지를 잘 보살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우린 이미 다 인사를 했다고 하셨습니다. 다만 이제 다른 가족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고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한 가족들이 올 수 있으니 한 두시간 정도 시간을 줄 수가 있냐고 물어보셨고, 저는 충분히 시간을 가지시라 말씀드렸습니다. 

 

     '프로페셔널하게 있어야해. 감정을 보이면 안돼.' 라는 생각에 바로 메드룸을 들어갔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이미 환자의 임종 순간부터 저를 살피던 수간호사도 함께 들어와서는 '너의 첫번째 순간이지? 이 순간을 잊지 못하게 될거야. 그래도 넌 최선을 다해서 저 분을 돌봤고, 가족분들도 다 너에게 고마워하고 있어.' 라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간호사가 되서 환자가 언제 돌아가실지도 몰랐다고 자책을 하자, 수간호사는 저에게 절대 네 잘못이 아니라면서 그러기에 호스피스 환자가 아니었냐 다독여주었습니다. 이 분 이후로는 단순 숫자보다는 환자의 상태를 살펴보게 되었고, 아무리 lab value 나 바이탈이 좋다고 하더라도 직접 제 눈으로 보는 환자의 상태를 더 믿게 되었습니다. 

 

     환자가 사망을 하게 되면 담당 의사와 간호사는 '사후 (post morterm) 기록'을 해야합니다. 의사는 법의학자 (Medical Examiner) 에게, 간호사는 환자의 장기 기증 동의 여부에 관계없이 우선 각 주의 장기 기증 등록기관에 사망 1시간 이내로 연락을 합니다. 환자의 기존 병력들이나 입원 이유와 연관있는 사망이라면 장레 준비 절차로 가지만, 만약 사안이 분명하지 않거나 의료사고 등이 의심되는 경우에는 환자가 사망한 그 상태 그대로, IV 라인들, 산소마스크, NG tube 등 하나도 빠짐없이 보존을 하고 병원의 영안실로 보내져서 법의학자가 환자의 상태를 검토하고, 사망원인을 진단합니다. 장기 기증 등록기관에서는 간호사에게 환자의 기본 정보 및 기존 병력들이나 사망 이유를 물어보고, 각막 하나라도 장기 기증이 가능한 상태라고 판단이 되면, 그 기관에서 환자의 직계 가족에게 연락을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장기 기증 가능 여부에 관계없이 고유번호가 증여되는데, 그 고유번호는 환자의 사망 증명서에 반드시 필요한 정보임으로 꼭 기록해둬야 합니다. 

 

     2. 아빠 차 뒷좌석에서 태어난 아가 (*출산 관련 적나라한 부분이 묘사 되어있습니다.)

 

     간호대학교 졸업학기 때 저는 캡스톤 프로그램으로 졸업 전까지 마지막 7주의 실습을 동네 병원의 응급실에서 오버나잇 근무로 보냈습니다. 낮에는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밤에는 실습을 하느라 너무 피곤했던 저를 안타깝게 여긴 프리셉터는 환자가 없는 시간에는 살짝 졸아도 된다며 몰래 졸기 좋은(?) 구석을 알려주셨습니다. 그 날도 살짝살짝 졸고 있는데 갑자기 응급콜이 들어왔습니다. 911에서 온 전화였는데 지금 산모가 진통이 심해서 남편이 자차로 이 병원 응급실로 오고 있고, 10분 내 도착 예정이라는 알람이었습니다. 응급실에서는 바로 분만실로 연락을 하였고, 순식간에 응급실 의사, 응급실 간호사, 응급실 간호조무사, 산부인과 의사, 산부인과 간호사, 간부인과 간호 조무사들이 모두 모여 산모를 이동시킬 간이침대, 혹시 아이가 나올 경우 아이를 낳아 이동할 인큐베이터를 들고 응급실 앞으로 뛰어나갔습니다. 분명히 도착할 시간인데 응급실 앞에는 아무도 없어서 모두가 어리둥절 하고 있는 사이 주차장 저 멀리에서 도와달라고 외치는 한 남자가 보였습니다. '분명 저 사람이다! 그런데 왜 저렇게 멀리 차를 댔지??' 생각하며 모두 뛰어올라갔고, 다행히 급히 연락을 받은 환자의 둘라 (doula: 조산사) 도 딱 시간을 맞춰 병원에 도착을 했고, 바로 뒷좌석으로 뛰어들어가서 이미 반쯤 나온 아이의 머리를 붙잡고 산모의 출산을 도와주었습니다. 다행히 몇 분 내로 아이는 건강하게 아빠 차의 뒷좌석에서 태어났고, 우렁차게 울어댔습니다. 바로 아가는 신생아 담요에 쌓여 인큐베이터로 들어가서 자세한 검사를 위해 NICU로 이동되었고, 산모는 덜덜 떨면서 뒷좌석에서 걸어나와 간이침대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다들 아기에 신경이 쓰느라 뒷좌석에서 걸어나오는 산모를 보지 못해서 제가 갖고나온 따뜻한 담요를 덮어드리자 너무 고맙다고 인사를 하시고 저도 출산을 축하드린다 인사를 드렸습니다. 

 

     상황이 어느정도 정리가 되자 옆에서 깊게 심호흡을 하고 계시던 남편이 보였고, 괜찮으시냐 여쭤보며 함께 병원 안으로 걸어들어갔습니다. 들어가며 그런데 왜 응급실 앞에 바로 차를 안 대시고 멀리에 대셨냐 물어보니, 응급실 앞은 앰뷸런스와 장애인 전용 주차공간인걸 봐서 주차를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충분히 응급상황이셨으니까 그럴 떄는 거기에 그냥 문 앞에 대셔도 돼요...😅" 라고 말씀드리고 산부인과로 안내해드렸습니다.  

 

     나중에 들은바로는 산모와 아가 모두 건강히 잘 퇴원했다고 합니다 :)

 

 

 

     3. 의지의 중요성 

 

     병동에서 일할당시 케어를 했던 99세의 할아버님이 계셨는데 정말 나이가 안 믿겨질 정도로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정정하신 분이셨습니다. 그 분은 두 다리에 상처가 크게 있어서 그 상처 치료를 위해 입원하신 분이셨는데, 원래는 5일 정도로 예상되었던 입원기간이 계속 늘어나서 거의 한 달 동안 저희 병동에 계셨었습니다. 처음 입원하셨을 때는 현재 가족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증손주 이야기도 해주시고, 여러가지 말씀도 재미있게 하셔서 우리 병동의 분위기 메이커라고 불리우시곤 했습니다. 퇴원 하고나면 퇴원 기념으로 친구분들과 여행을 가기로 했다며 여행 계획을 저에게 신나게 자랑하셨었는데, 상처의 진행 상태가 좋지 않아서 퇴원이 계속해서 미뤄지다보니 초롱초롱했던 할아버님의 눈에 그 빛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 너무나 뚜렷하게 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다리 드레싱 교체를 하다가 평상시와 달리 아무 말씀도 없으신 할아버님을 보며 "힘내셔야죠. 힘내셔서 친구분들이랑 여행 같이 가셔야죠." 하니 "아니야...난 이게 끝이야. 병원에서 죽기 싫었는데 이렇게 가게 되네..." 라고 쓸쓸히 말씀하셨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냐, 아직 정정하시고 상처들도 많이 나아졌다 말씀드렸는데도 대답은 커녕 더 이상 눈길도 마주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의지를 놓으신 할아버님은 그 말씀을 하시고 정확히 24시간 뒤에 돌아가셨습니다.

 

     4. 제발 건강하게 행복하게 자라주길 

(*출산 관련 적나라한 부분이 묘사 되어있습니다.)

 

     응급실에서 일했을 당시 있었던 일입니다. 1층의 소아응급실에서 점심시간 커버 및 엑스트라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주는 float nurse 로 일하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병원 전체 알람으로 소아 환자의 생명이 위험한 응급 상황에서만 부르는 Code Blue Junior 가 2층 일반 응급실 위치로 울려퍼졌습니다. 바로 응급실 전체 모니터를 살펴보니 2층에 소아 환자는 없는 상태였습니다. 다들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두 명의 의사는 상황 파악을 위해 2층으로 바로 뛰어올라갔고, 그 사이에 또 응급실에서는 부르지 않는 Rapid Response 가 2층 일반 응급실 위치로 울려퍼졌습니다. Rapid response는 의사를 부르기 위한 알람인데 응급실에는 24/7 의사들이 항상 상주해있기 때문에 심근경색증이나 뇌출혈 의심 환자가 아닌 이상 병원 전체 알람을 부르지 않습니다 (참고포스팅: Rapid Response 와 Code 의 차이). 응급실에서 왠 rapid response? 지금 저 위에 의사랑 PA 둘 다 있는데? 다른 위치를 잘못 부른거 아닌가? 웅성대는 사이 저는 혹시 몰라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2층에 올라가자마자 마주친 상황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그 자체였습니다. 환자용 화장실은 문이 뜯어져 있었고, 각종 공구가 쏟아져있는 상황에 바닥은 피바다였고, 간이 침대위에 거친 숨을 몰아쉬는 여자 환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는 또 다른 여자, 그리고 분명히 소아환자가 없었던 2층 응급실에서 신생아 울음소리가 들리고 있었습니다. 

 

     이야기는 다리가 계속 부어서 응급실에 온 여성 환자로부터 시작됩니다. 20대에 기존 병력이 없는 건강한 환자였는데, 자꾸 다리가 붓고 저려서 응급실을 찾아왔습니다. 여러가지 기본 검사를 하던 도중, 가임기 여성에게 기본으로 하는 소변 검사에서 임신 양성 결과가 나왔습니다. 담당 의사가 환자에게 임신 상태인지 알고 있었느냐, 물론 더 검사를 하겠지만, 임신을 하면 다리가 붓는건 당연하다고 이야기를 하자 같이 온 여자가 (위의 상황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던 여자와 동일인) 의사에게 마구 짜증을 내며, 부은 다리 때문에 왔는데 왜 임신 이야기를 하냐며 소리를 질렀다고 합니다. 부은 다리와 임신 상태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한다고 의사가 설명을 해도 막무가내 입장으로 부은 다리나 고쳐내라고 했답니다. 알고보니 환자와 사촌관계였고, 환자는 플로리다에서 이 사촌언니를 보기 위해 홀리데이 시즌 다 지난 1월 추운 겨울에 뉴욕까지 기차를 타고 혼자 올라왔다고 했습니다. 어쨌든 환자는 임신 상태를 몰랐었다고 했고, 태아의 정확한 건강 상태를 알기 위해서 자궁 초음파 검사 및 혈전 검사를 위한 다리 초음파 검사를 받습니다. 초음파 검사상 다리에는 혈전이 없었고, 환자는 임신 36주에 전혀 출산의 기미 없이 건강한 상태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36주면 언제 아이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데, 뉴욕에서 제대로 지내는 곳은 있는지, 정해진 산부인과는 있는지 물어보니 그냥 사촌언니의 방에 얹혀 지내는 중이라고 대답합니다. 만삭인 산모를 그냥 퇴원시키기에 마음이 불편했던 담당 의사는 병원 케이스 매니저에게 환자의 상황에 맞는 산부인과를 찾아 줄 수 있는지를 부탁했다고 합니다. 겨우 시간이 나서 짬을 내서 점심을 먹고 있었던 케이스 매니저는 혹시 응급 상황인지, 아니라면 점심을 빨리 끝내고 갈 수 있는지 물어봤고, 응급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의사도 괜찮다고 천천히 올라오라고 전합니다. 병실에서 케이스 매니저를 기다리고 있던 환자는 화장실을 쓰겠다고 병실을 나왔고, 약 10분 뒤, 화장실에서는 마치 짐승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고 합니다. 마침 2층을 라운딩 하고 있던 수간호사가 화장실 문을 열려고 했으나 안에서 잠궈져있는 상태였고, 아무리 문을 열라고 소리를 질러도 그 환자는 울부짖기만 했다고 합니다. 수간호사가 급하게 시큐리티에 연락을 취해서 화장실 문을 뜯어내고 보니, 환자가 다리를 벌리고 서서 울부짖고 있었고, 그 다리 사이에서 아기의 머리가 나오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상황에서 Code Blue Junior 와 Rapid Response 가 울리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 사이 연락을 받은 분만실 간호사와 의사가 인큐베이터를 들고 내려왔고, 1층에서 뛰어올라간 의사 중 한명이 아기를 받고 탯줄을 정리한 후 아기는 바로 인큐베이터 안에 놓여져 NICU 로 올라갔습니다. 환자 또한 간이침대에 올라 급하게 응급처치를 마치며 새로 IV 라인을 잡으며 새로 채혈 후 산부인과로 올라갔고, 환자의 사촌언니라는 사람은 이 곳에 오면 안됐었다고 소리소리를 지르며 누구를 향해 하는지도 모르는 욕을 하며 환자를 따라 올라갔습니다. 분명히 약 한두시간 전에 한 자궁 초음파 검사에서 전혀 출산의 기미가 없었는데 이런 상황이 발생해서 담당 의사는 환자의 새로 채혈한 혈액과 처음 채혈한 혈액 두 샘플에서 toxicology (마약성 약물 검사) 를 추가 요청했습니다. 그 결과 환자의 두번째 혈액에서만 마리화나와 코카인이 검출되었고, 이전 혈액에서는 마리화나만 검출되었습니다. 케이스 매니저를 기다리는 사이에 화장실에서 몰래 코카인을 흡입하다가 조기 분만이 된 것이라고 결론이 지어졌습니다. 만약 케이스 매니저가 점심을 스킵하고 일찍 올라와서 환자의 퇴원을 도와주었다면, 차디찬 공중화장실 바닥에서 출생되었수도 있었던 아이였습니다. 플로리다에서 올라온 이유는 사촌을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아이를 유기하려고 온 것이었고, 아이를 낳자마자 플로리다로 다시 돌아가려는 계획이었습니다. 환자는 아이를 바로 입양을 보내기를 원했습니다. 임신 기간 내내 여러 종류의 마약에 노출되었던 아가는 NICU에서 오랜 입원 생활을 해야 했고, 다행히 환자의 먼 친척 중 한명의 입양 의사를 보내왔고, 입양 기관의 신중한 검토 끝에 아기는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된 후 입양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외에도 평상시와 다르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 아내에게 굿나잇 키스를 한 후 심장마비로 침대에서 영원히 일어나지 못한 50대 젊은 남성분, 응급실에 들어오면서 나 죽네 나 죽네 소리를 지르다가 갑자기 돌아가신 30대 여성분 (뇌출혈이나 심장마비를 의심했으나 둘 다 아니었던 케이스라 법의학자에 넘겨진 케이스), 저녁을 먹다가 심한 두통 호소 후 급성뇌출혈로 돌아가신 40대 여성분 (코로나가 뉴욕에서 특히 심했던 때라 환자 한명당 보호자 한 명만 응급실에 들어올 수 있었지만, 대기실에서 아빠만 들여보내고 혼자 훌쩍이던 19살 아들을 홀로 둘 수 없어서 담당 의사가 당신 의사 면허를 걸고 아들까지 들어오게 했던 상황) 등 슬프게도 너무나 갑작스럽게 다가온 죽음의 순간들이 화려한 탄생의 순간들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더 할 수 있었던 것은 없었을까 자책을 많이 했지만, 이제는 저 뿐만이 아니라 코드팀 모두가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최선을 다해 환자에게 제공한다는 것을 알기에 더 이상 자책하지 않습니다. 다만 모든 사람들이, 죽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나에게, 나의 가까운 사람들에게 성큼 다가올 수 있는 것이라는 걸 알고 소중한 하루하루를 값지게 살아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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