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간호사

환자가 우선, 당당한 간호사 되기

간호사 멘토 소피아 2020. 11. 4.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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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간호사 멘토 소피아입니다. 오늘은 짧지만 제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간호사의 소임을 하나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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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처음에 간호사 일을 시작하면서 저보다 나이가 많은 간호조무사들(Nursing Technician or Certified Nursing Assistance)에게, 아니 그냥 누군가에게 내가 할 일을 "시킨다" 라는 것이 너무 불편했습니다. 사실 무언가를 '시킨다' 라는 개념보다는 워낙 해야할 일들이 많은 상황에서 간호사로써 효율적으로 일을 하기 위해서 굳이 간호사 면허가 필요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들을 간호조무사에게 위임하는 것이죠. (Vital signs, Cleaning, turning and changing patients, Feeding patients, Transporting patients 등등등). 그러려고 간호조무사들이 간호사와 함께 일을 하는 것이기도 하구요. 영어로는 Delegation (델리게이션) 이라고 하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워낙 저뿐만이 아니라 새내기 간호사들이 어려움을 갖고 있는 부분이기에, 실제 면접 상황에서도 이것에 관련된 상황을 물어보곤 합니다. (미국 병원 취업 면접 질문들과 팁들을 보시려면 여기를 눌러주세요.) 

 

     병동에 있었을 당시에는 물론 제가 시간이 있다면 굳이 바쁘게 일하는 간호조무사들에게 일을 부탁하고 기다리지 않고, 제가 직접 환자를 위해 새 침대를 만들어주거나, 환자의 점심 식사를 도와주곤 했습니다. 그랬던 이유는 제 성격이 급해서이기도 하지만, 제 담당 환자들이 그 시간동안 누군가를 한없이 기다리며 불편해할 상황을 최소화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큰 병원의 병동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저의 이런 모습을 본 간호조무사들이 저에게, 

 

"I appreciate what you do for us. Please don't ever change." 

(우릴 위해 이런 일 해주는 것이 고마워. 부탁인데 제발 바뀌지마.)

 

라는 말을 했었습니다. 특히 새내기 간호사들은 처음에 간호조무사들에게 무언가를 물어보거나 위임하는 것이 불편해서 모든 일들을 직접 다 하려고 하는데, 시간이 흐르고 경력이 쌓이다보면, 더 효율적으로 일을 하기 위해서라기 보다 "난 이딴거나 하려고 간호학교에서 빡세게 공부하고 국가고시 친거 아니야" 라는 마음가짐으로 간호조무사들을 마치 하인 부리듯이 대하는 간호사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정말 바빠서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간호조무사들에게 503호 병실 환자 점심 시간 전에 혈당 체크 해야하는거 잊지 말라고 해놓고, 자기는 널싱 스테이션에서 앉아서 핸드폰을 만진다거나 다른 스탭들과 마냥 수다를 떤다는 것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혈당 체크 하는거 진짜 1분도 안 걸리는 일입니다. 물론 혈당 체크를 하려고 우리가 그렇게 힘들게 공부를 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환자가 우선이어야 하는 간호사이니, 점심 식사가 왔는데도 혈당 체크를 못해서 음식이 차갑게 식어갈때까지 식사를 못하는 환자들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침대 정리를 하러 밤새가며 공부하고 국가고시를 치룬 것은 아니지만, 자기 침대도 아닌 불편한 병원 침대에서 소변을 못 가려 축축하게 젖은 이불 위에서 불편하게 누워있을 환자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제 마음을 꿰뚫어본 간호조무사들은 제가 도움이 필요할 때는 어떤 간호사들보다 먼저 제 담당 환자들을 도와주었고, 자신들이 시간적 여유가 있을때는 제가 도와주려고 해도 농담식으로 자기 밥그릇 뺏지 말라며 오히려 제 도움을 사양하며 제 담당 환자들을 도와주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관계에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함께 일하는 동료 간호사들이나 의사들과도 이런 상황을 많이 맞닥뜨리고 있습니다. 제가 저번 포스팅에 언급했었던 뇌졸증 의심 환자 이야기가 기억 나시나요? (이 포스팅 에서 끝에서 두번째 문단에 써있답니다.) 이 글을 쓰고 몇일 후, 저는 그 환자 담당 수술 의사로부터 감사 인사를 받았습니다. 저의 적극 추천으로 퇴원 예정 이었다가 입원하게 된 그 환자는 CT 상으로는 CT (head & neck) 과 CTA 둘 다 negative 였지만, 증상이 계속 되어 MRI 를 찍게 되었고, MRI 결과 새 뇌출혈 부위가 발견되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저 상황에서 괜히 일을 크게 벌리기 싫어서 세시간 동안 환자의 증상을 꾀병으로만 치부한 동료 간호사나 마취과 의사말을 따라 그냥 예정된대로 환자를 퇴원실로 보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저는 병동에서 일할 때만 해도 cardiac rhythm 에 정말 젬병인 간호사였습니다. 저희 병동은 telemetry 병동이 아니었고, 제가 응급실로 내려가기 몇달 전에 telemetry 병동으로 바뀌었지만, 저희 병원에는 따로 telemetry room 이 있었고, 거기에서 12시간 내내 환자의 리듬만 보는 특수 훈련된 간호 조무사들이 있었고, 리듬이 환자의 평소 리듬에서 바뀌거나 심박수가 급격히 바뀌면 바로 간호사에게 연락이 왔기 때문에 따로 공부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못난 간호사였습니다. 

 

     응급실에서 일을 하면서부터 여러가지 리듬의 차이점에 대해서 배우고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복도를 지나가다가 우연히 본 병실 속 환자의 모니터에서 V tach 을 발견하고 바로 코드를 부르기도 했고, 어느 정도의 심박수나 어떤 리듬은 정확히 어떤 약들을 얼만큼 사용하는지도 익숙해졌습니다. 회복실에 어플라이를 했을 때 저의 응급실 경력이 굉장히 플러스였다는 말을 들었지만, 응급실에서 겨우 3년만 일한 상황이라 많이 아는 것이 없다고 속으로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응급실 경력 덕분에, 저는 제 담당 환자들이 수술 후에 EKG 리듬이 바뀐 것을 빨리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특히 오늘 기준으로 일주일 내로 세 명이나 되는 환자가 수술 후에 리듬이 바뀌었는데 제가 병동 때처럼 전혀 리듬에 대한 지식이 없고, 설사 리듬이 뭔가 바뀐 걸 알아챘어도 내가 가진 지식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면 전 빠른 시간내에 의사를 페이지해서 필요한 오더를 받아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환자에게 당당한 간호사가 되기 위해서 계속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제 지식을 시험을 봐서 채점하진 않지만, 매번 일을 하면서 실제 상황에서 제가 가진 지식을 활용해서 환자에게 최고의 evidence based care 를 제공하는 것이 간호사의 진정한 소임이라고 생각하며 궁금한 것은 바로 찾아보고 모르는 것은 정확한 지식을 얻기 위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한국 병원에서든 미국 병원에서든 이런 우스갯소리는 어디에서나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가 만약에 일하다가 쓰러지면, 여기 리스트에 적힌 의사들은 내 몸에 손도 못대게 해.")

 

     예전에 일했던 곳에서도, 현재 일하는 곳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그럴때마다 저희는 의사뿐만이 아니라 담당 간호사 리스트도 분명히 있다고 농담 아닌 농담을 던지곤 합니다. 함께 일하는 동료인 상황에서는 아무리 친절하고 재미있는 동료 간호사라도, 내가 환자인 입장에서는 나와 평소에 가깝지 않아도 무조건 실력이 우선인 간호사를 찾게 되는 건 당연하겠죠? 전 모든 환자들에게 그런 간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간호 조무사들이 바쁠 때 그들의 업무들을 하는 것이 저에겐 전혀 기분 나쁜 일이 아니고, 환자가 저에게 어떤 증상을 말하거나 제가 무언가의 변화를 발견했을 때, 담당 의사가 얼마나 간호사를 하대하고 싸가지가 없어도 그에 상관없이 환자를 지지하는 일이 당연한 것입니다. 

 

     요 몇일 내에 수술 후 환자의 EKG 리듬이 바뀐 것을 알아챈 적이 세 번 있었습니다. 세 번이면 세 번 다, 제가 담당 마취과 의사는 일을 크게 벌이고 싶어하지 않아했습니다. 그냥 수술 잘 끝내고 퇴원하면 되는 케이스인데, 괜히 간호사가 들쑤셔서 기록도 더 해야하고, 오더도 더 내야한다는 식인거죠. 하지만 전 그런 태도들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당당하게 제 담당 환자 상황을 이야기하고 필요한 오더를 받아냈습니다. 환자들도 당일 퇴원을 예상했다가 하루 더 지내야 한다는 말에 신나하진 않았지만, 그렇게 된 이유를 듣고나면 오히려 더 고마워한 상황들이었습니다. 

 

     응급실에서 일하고 있던 어느 날 제 별명이 drill surgeant 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말로 하면 '교관'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처음 제 별명을 들었을 때 전 말 그대로 빵 터졌습니다. 전 FM인걸 나름 티를 안 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의사고 간호사고 할 것 없이 다들 동의를 하더라구요. 전 단지 해야 하는 방식으로 일을 한 것이고, 몰랐던 부분이 있으면 제대로 알아내기 위한 노력을 한 것 뿐인데 말이죠. 너무 바쁘면 저도 cutting the corner (지름길식으로 요령껏) 하고 싶지만, 그럼 그렇게 해서 손해보는 것은 제 담당 환자들인데 그건 절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자극적인 일이라도 그 상황에 계속 노출되다보면 그 상황에 대해 점점 무뎌지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런 무뎌짐을 방지하기 위해서,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의료사고들을 방지 하기 위해서, 무조건 내 담당 환자가 필요한 케어를 정확하게 받기 위해서 한 당연한 행동들입니다. 일을 하면 할수록 그런 행동들이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나 엄격하게 보일 수 있다는 것에 전 놀랐고, 그렇게 변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입니다. 

 

     간호사로써 요령이 생긴다는 것과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한다는 것은 엄연히 다른 상황입니다. 하지만 일을 하다 보면 이 둘을 같은 선상에 놓고 보는 동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실 것입니다. 그리고 맞게 상황에 대처를 하는 것을 마치 일부러 일을 크게 만들려고 들쑤시는 것이라는 인상을 주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주변에서 쉽게 쉽게 가자고 속삭여도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간호사로써의 소임을 다 해야합니다. 내 앞에 누워있는 이 환자가 나의 엄마이고 내 자식이라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답은 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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