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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간호사 멘토 소피아입니다. 저희 동네에는 새벽부터 밤 11시까지 운영을 하는 맥도날드가 있습니다. 출퇴근 길에 보거나 장을 보러 갈 때 이 맥도날드를 지나치게 되는데 정말 한번이라도 드라이브스루에 차가 없는 날을 본 적이 없습니다. 사실 저도 가끔 맥도날드만의 꾸덕한 바닐라 소프트 아이스크림이나 감자튀김이 먹고 싶어서 들르긴 하지만, 특히 금요일 밤이나 토요일 오전에는 이 맥도날드에 들어가고 나오는 차량들 때문에 교통 체증이 생기기도 한답니다. 오늘은 짧지만 저에겐 큰 의미가 있었던, 맥도날드를 볼 때마다 생각이 나는 환자분의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제가 응급실에서 밤 근무를 할 당시, 여느때와 다름없이 매우 바쁜 근무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습니다. 응급실에서 근무하면서 특히 아쉬웠던 부분 중에 하나는 제 담당 환자분들이랑 rapport 를 형성할 수가 없을만큼 바쁘고 정신없는 상황들이 많았다는 점입니다. 물론 방에 처음으로 들어갈 때마다 눈을 마주치며 살갑게 인사를 드리고, 불편하신 곳을 말하시면 어떻게 언제부터 발생한 통증인지 조사하면서 최대한 빨리 도와드리곤 하지만, 그렇게 환자분을 settle down 한 후에는 담당 구역에 새로 들어오시는 환자분들이 워낙 많아서 대개 퇴원 오더가 내려질 때까지 다시 첫 환자분의 얼굴을 못 보는 경우가 다반사였답니다. 그 날도 그렇게 정신없이 담당 구역에서 일을 하고 있다가, 응급실이 잠시나마 잠잠해질 때인 새벽 세시쯤에 퇴원 오더가 한시간 전에 내려졌는데도 퇴원을 하지 못하신 환자분께 다시 들어가 볼 시간이 생겼습니다.
Chest pain 으로 들어오신 60대의 남성 환자분이셨습니다. Chest pain 이라는 증상 때문에 응급실에 들어오시자마자 stat EKG, troponin, CXR 등 필요한 기본 테스트들을 마치고, 4시간 후에 두번째 troponin 까지 negative 로 나오셔서 퇴원 오더가 내려지신 분이었습니다. 퇴원 오더가 내리자마자 환자분 방에 들어가서 퇴원 설명서 (discharge instruction) 을 리뷰하고 있는데, 그 중 You need to eat healthy. 라는 의사의 지시서에 도'대체 어떻게 먹어야 건강하게 먹는거냐, 나는 집에 가족도 없고, 맨날 맥도날드만 먹는데 어떻게 건강하게 먹으라는 거냐, 이렇게 추상적인 문구만 주면 난 퇴원 못한다'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저는 우선 급하게 봐야 할 다른 환자들도 많았기 때문에, 환자분께 그럼 잠시 대기 해달라고 부탁을 했고, 새벽 세시쯤에야 다시 환자분을 뵐 수 있었습니다.
우선 방에 앉아서 환자분께 자세한 상황을 여쭤보니, 환자분의 자녀들은 장성하여 독립을 한 상태였고, 아내분과는 얼마전에 사별을 한 상태셨습니다. 평소에 아내분께서 요리를 하셨기에 혼자서는 끼니도 제대로 못 차려 드시고 계셨고, 현재 두 명의 자녀들 중 누군가와 살지 의논을 하고 있는 상태라 결론이 나기까지는 집에서 혼자 살며 예전엔 들어가지도 않았지만 그나마 브랜드 이름을 알고 있는 맥도날드에서 매일 세 끼를 드시고 계셨다고 했습니다.
"나도 건강하게 먹어야한다는 걸 알아요. 누가 그걸 몰라? 그런데 어떻게 건강하게 먹어야 하냐는거지."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에 저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컴퓨터에서 맥도날드 전체 메뉴를 찾아서 프린트했습니다.
"지금 상황이 그러하시다면, 이 맥도날드 메뉴에서 건강한 메뉴들을 저랑 같이 찾으시면 돼요."
다행히 제 담당 구역에 새로 환자가 들어오지 않는 상황이어서, 저는 환자분과 함께 머리를 맞대며 맥도날드의 메뉴를 공부했습니다. 보통 카운터 위 메뉴 옆에 햄버거나 샌드위치 사진을 커다랗게 붙여놓은 맥도날드의 시그니처 메뉴들을 주문하셨다고 하셨는데, 전 메뉴 구석에 조그맣게 써져있는 메뉴들 중에 하나인 과일이 들어간 오트밀, 다양한 종류의 샐러드들, 치킨샌드위치의 패티를 튀긴 치킨대신 구운 닭으로 요청하기, 세트 메뉴에 딸려오는 감자튀김을 사과로 바꾸는 방법 등등 정해진 상황 내에서 최대한 건강한 메뉴를 선택하실 수 있게 도와드렸습니다. 또, 세트 메뉴말고 그냥 단품으로 햄버거나 샌드위치 하나를 시키셔도 된다고 알려드렸을 때, 환자분은 당신은 맥도날드는 항상 세트 메뉴밖에 없는 줄 알았다며 그래서 꼭 감자튀김과 탄산음료를 같이 먹어야하는 줄 알았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누가 알려줬어야 알지... 항상 뒤에 사람들 기다릴까봐 서둘러 주문하느라 뭐가 뭔지도 몰랐어요."
제가 간호학생이었을 때 간호 본과 첫 학기에 교수님께서는 저희 모두에게,
"우리는 환자의 가족이자 선생님이자 옹호자다."
"We are patient's family, teacher, and advocate."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교수님의 저 말씀을 그 때는 제대로 이해를 못했는데, 일을 하면서부터 환자분들이 병원에서 얼마나 취약한 (vulnerable) 상황에 놓여있는지 알게 되었고, 그 때부터 그야말로 환자의, 환자에 의한, 환자를 위한 간호사로써의 사명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예전 포스팅에 썼던 것처럼 전 환자들을 위해서라면 필요시 의사들의 의견에 반대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환자분이 제일 기억에 남으시나요? 제가 맥도날드를 보면 이 환자분이 생각나는 것처럼, 어떤 이미지가 강하게 뇌리에 박힌 환자분이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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