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간호사

미국 간호사 혹은 새로운걸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

간호사 멘토 소피아 2021. 3. 14.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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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간호사 멘토 소피아입니다. 오늘은 미국에서 간호사 공부를 하는 것을 생각하시거나 이미 한국에서 간호사이신 분들로부터 제일 많이 들어온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할까 합니다. 미국에서 간호사 하기에, 혹은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는 대충 몇 살 정도일까요?

     제 예전 포스팅들을 보신 분들은 알고 계시겠지만 전 간호학을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처음 수료하였습니다. 강의 시간이 오전이나 오후 시간으로 정해진 4년제 대학교와는 달리 커뮤니티 컬리지는 오전 오후 강의는 물론 저녁 시간과 주말에도 클래스가 있기 때문에 공부를 다시 하고 싶어하는 어른들에게 알맞고, 때문에 일을 계속 하면서 아니면 육아를 하면서 제 2, 제 3의 커리어를 위하여 공부를 하는 어른 학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간호본과를 처음 시작했을 때 일반적인 대학교 신입생 나이였던 저의 또래는 40명 학급에 1/3 정도밖에 안됐었습니다. 그 중에 제일 나이가 많으셨던 분은 직업 군인이셨다가, 개인 사업을 하셨다가, 유엔에서 함께 일했던 간호사들에게 감명을 받아 간호학을 공부하시러 온 60대 남성 분이셨습니다. 악명 높았던 저희 학교 간호본과는 대개 신입생의 4~50% 정도밖에 졸업을 하지 못했는데 그 분보다 훨씬 어린 친구들이 본과 과정을 패스하지 못하고 떨어져 나갈 동안 그 분은 굳건히 자리를 지키시고 저를 포함한 다른 동기들과 함께 졸업을 하셨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고등학교 2학년 2학기까지 마치고 미국에 왔습니다.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싶다고 자퇴서를 내미는 저에게 그 당시 제 담임 선생님은 너 지금 가면 너무 늦다, 지금 한국에 있어도 충분히 괜찮은 대학교 갈 수 있는데 왜 마음이 들떠서 이러느냐, 차라리 자퇴말고 휴학을 하고 좀 쉬었다가 오는 것이 어떠느냐 등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물론 아끼는 제자가 힘들고 어려운 길로 가는 것이 안타까워서 해주신 말씀이라는 것은 그 때에도 지금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자신이 있었고, 걱정해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전 제가 하고 싶은 걸 잘 할 자신이 있다고 말씀드리고 자퇴서를 접수하였습니다. 만약 제가 그 당시에 선생님 말씀을 듣고, '그래... 요즘 애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조기유학을 간다던데 이제 고3이 되는 나는 너무 늦지. 그냥 마음잡고 한국에 있어야겠다.' 라고 결정했다면 어땠을까요? 전 아무리 생각해도 그 때 미국에 온 것에 대한 후회가 0.1% 도 없습니다. 만 17세가 새 시작을 하기에 그렇게 늦은 나이였나요? 전혀 아니죠. 한국은 흔히 말하는 '나이 후려치기' 가 너무 심합니다. 예를 들어 25살은 아주 파릇파릇하고 젊음이 솟아 넘치는 나이인데 한국에서는 '반오십' 이라는 말로 이미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인 것처럼 말을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유투버 사랑님도 한국에서 20대 초중반까지 예체능을 전공 하시다가 영어 한마디 못하시는 상태에서 미국에 오셔서 현재는 미국 치대를 졸업하고 치과 의사가 되셨습니다. 미국에서는 어린 학생들에게 '은퇴한 노인들' 의 이미지가 어떻냐고 물으면 새빨간 뚜껑 열리는 스포츠카를 몰고 햇빛이 내리쬐는 플로리다 주에서 삶을 즐기는 모습을 말하는데 한국은 어떤가요?

     이쯤 되면 제 포스팅 제목에 대한 답이 어떨지 눈치 채셨죠? 미국에서 일할 때는 간호사 뿐만이 아니라 다른 필드에서도 나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간단한 알바 자리를 잡으려고 해도 신청서에 정해진 나이제한이 있습니다. 미국은 그러면 차별한다고 바로 노동부에 신고가 들어갑니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 저는 나이를 핑계삼아 하고 싶은 일을 시작조차 못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 때 생각하지 못했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제가 지금까지 미국에서 보고 겪은 상황들로 봐서 이 곳에서는 나이보다 '태도' 를 훨씬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아직도 기억나는 제가 간호학생 일 때의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저희는 일주일에 사흘은 학교에서 강의를 들었고, 이틀은 병원에 나가는 실습 수업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간호학생 때 실습에서 배우는 건 전체적인 분위기와 환자와의 친밀한 관계 (rapport) 를 형성하는 법 정도가 아닐까 싶지만 병아리 간호학생일 당시에는 긴장감이 가득한 이틀이었습니다. 오전 6시 45분까지 정해주신 병원의 병동 앞에 집합해서 7시쯤 진행되는 쉬프트 간호사들간의 hand off report 를 방해 안되게 옆에서 조용히 서서 모르는 단어는 스펠링 엉망으로 적어가며 듣고, 오후에 마무리 미팅을 하기전까지 병동의 필요한 일들은 빠릿빠릿하게 도와주느라 온 몸의 신경이 긴장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실습조는 매 학기 초에 정해지는데 본과 두번째 학기 때 만난 그룹에는 50대 여성분과 50대 남성분이 있었습니다. 그 학기의 첫 실습 날에 간호사 스테이션 앞에 모두 집합 상태였는데 50대 남성분만이 보이질 않았습니다. 교수님은 그 친구한테 미리 연락을 들은 사람이 있는지 물어봤지만 아무도 그 분의 연락처조차 몰랐습니다. 혹시 응급상황이 생긴거 아닌가 다들 걱정하던 찰나 구김이 가득한 실습복 차림에 한 손에는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그 분이 슬렁거리는 발걸음으로 병동으로 들어왔습니다. 다들 어이가 없었지만 교수님은 혹시 응급상황이 있나 걱정되었다, 늦을 것 같으면 앞으로 전화를 미리 달라 이야기를 하시며 말이 나온 김에 다들 연락처를 공유했습니다. 또 교수님은 우리 학교 이름이 써져있는 실습복을 입은 간호학생으로써 학교를 대표하기도 하고, 환자분들은 우리가 실제 간호사인지 간호학생인지 모르니 병원 이미지에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다음부터는 실습복은 다림질을 해서 깔끔한 모습으로 와달라고 하셨습니다. 다림질을 잘 못하고 실습복을 다림질을 하지 않는 저의 눈에 보기에도  이 분의 실습복은 진짜 누가 일부러 마구 손으로 구기거나 밟은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너무 구김이 심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그 다음 실습에도, 그 다다음 실습에도 계속해서 구김이 심한 실습복에 지각을 했고, 지각을 했음에도 어김없이 스타벅스는 들르는지 매번 큰 사이즈의 커피를 들고 오고 사과도 안한채로 병원에 모습을 드러내곤 했습니다. 실습 교수님이 몇 번 경고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고, 결국 그 분은 pass/fail 로만 나눠지는 실습 교육을 fail 해서 학과 수업 성적이 좋았음에도 그 분은 더 이상 저희와 함께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조였던 50대 여성분은 제가 함께 실습을 했던 날마다 교수님보다도 먼저 병원에 도착해서 병동 앞에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항상 웃으면서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계셨고, 아주 작은 걸 도와드려도 고맙다고 몇번이나 인사하시고, 저에겐 그 당시에 수련회 조교들만큼이나 무서웠던 병동 간호사분들과도 스스럼 없이 어울리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실습 후에 표정이 너무 안 좋아보이시길래 괜찮으시냐 물어봤더니 혹시 시간이 되냐며, 잠깐 이야기를 해도 되냐고 물으셨습니다. 어차피 그 날 실습수업밖에 없었던 저는 편하게 이야기하시라 하였고, 그 분은 열심히 하고 싶고 많이 배우고 싶은데 마음대로 몸과 머리가 따라 주지 않는다며 너무 속상하시다며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평상시엔 전혀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없었기에 속으로 전 많이 놀랐지만, 지금 무슨 말씀하시는거냐, 이렇게 잘하시면서 그런 말씀 하시면 전 더 속상하다, 우리야말로 하시는거 보고 많이 배우고 있다며 우리 같이 열심히 해보자고 응원을 했습니다. 그 분도 앞에서 말씀드린 60대 남성분과 같이 저희와 함께 졸업을 하고 지금은 군대 내 간호사로 일을 하고 계십니다. 저와 함께 실습 조였던 적은 없었지만 같은 학번이었던 40대 한국분도 계셨습니다. 그 분은 혼자서 중학생과 고등학생 두 딸을 키우고 계셨는데 영어가 전혀 익숙치 않은 상황에서도 열심히 공부를 하셨고, 저희와 함께 졸업을 하셨습니다. 

    전 '오늘이 내 남은 인생 중에 제일 젊은 날' 이라는 문구를 참 좋아합니다. 배움 앞에서 나이는 그냥 숫자일뿐이예요. 물론 저도 제가 중-고등학생 이었을 때처럼 밤을 샐 수 있다거나 이해력이 높지는 않습니다. 한번 읽어도 이해가 안돼서 다시 읽어야 하고, 한번에 책상 앞에 앉아있을 수 있는 집중력이 낮아졌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노력하고 있습니다. 같은 공부양이라도 예전보다는 좀 더 오랜 시간이 걸리니 현재 일 스케줄과 겹치지 않게 미리 계획을 짜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굳어진 뇌가 걱정이 되신다면 자신을 믿으시고 그만큼 더 노력을 하시면 됩니다. 혹시 혀가 굳어서 발음이 안 좋을까봐 걱정이신가요? 한국만큼 영어 발음에 목숨거는 나라도 없는 것 같습니다. 미국에는 워낙 다양한 인종들이 엮여살고, 덕분에 정말 다양한 억양들이 존재합니다. 전 오늘 아침에도 생전 처음 들어보는 억양을 쓰는 분과 대화를 했습니다. 따뜻한 물 (water) 을 부탁하셨는데 마침 아침식사로 빵을 드시고 계셨고 발음이 따뜻한 버터 (butter) 를 달라고 하는 줄 알고 버터를 갖다드리기까지 했답니다. 그런데 쪽팔리고 얼굴 빨개지고 창피해했을까요? 아니요. 둘 다 서로 빵 터져 한번 웃고, 전 따뜻한 물을 가져다 드렸답니다. 

     열정이 있는데 단지 '나이' 하나 때문에 망설이고 있으신 일이 있으시다면 그것이 미국 간호사가 되는 길이 아니더라도 전 무조건 도전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얼마전에 산부인과 간호사로만 30년 일한 간호사가 저희 회복실의 새 간호사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나이는 50대이신데 정말 배움에 대한 열정은 저보다도, 아니 10대들보다도 넘쳐흐르시는 분입니다. 30년 넘게 여자랑 아기만 보다보니 남자 환자는 참 낯설다고 하시면서도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시고, 새로운 케이스들이 보이면 질문을 하며 마치 스펀지처럼 쏙쏙 필요한 정보를 입력하시고 배우고 계십니다. 그리고 전 또 그 분을 통해 끊임없는 배움과 그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또 한번 깨닫고 있습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거나 전혀 다른 나라로 이민을 결정하기까지 다른 현실적인 벽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혹시 그 상황에서 단지 '나이' 때문에 망설이고 있으시다면, 제발 그 숫자 하나 때문에 무한한 가능성을 미리 포기하고 접지 마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오늘은 우리의 남은 인생 중에 제일 젊은 날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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