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간호사

제가 한국어를 하는데 왜 한국어 통역이 필요하죠?

간호사 멘토 소피아 2021. 3. 19.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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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간호사 멘토 소피아입니다. 제가 어제 일을 하면서 오랜만에 한국 환자분을 뵙게 되었어요. 덕분에 제가 예전에 일하면서 뵈었던 다른 한국 분들도 생각이 나서 오늘은 제가 미국 병원에서 일하면서 만나뵌 한국 환자 분들과의 에피소드들과 왜 제가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데도 한국어 통역이 필요한지에 대한 이유를 공유해보겠습니다. 

     우선 제가 사는 동네는 제가 처음 왔을 때만 해도 한국 분들이 많이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한 동네에 10년 넘게 살다보니 이제는 고속도로로 30분만 타고 나가면 한국마트도 있고 치킨집도 생겼어요! :D 그래서 그런지 제가 처음 일을 시작했던 외래 소아과나 일반/소아병동에서는 환자분으로 한국분들을 뵌 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한국 환자분을 뵌 것은 응급실에서 나이트 근무를 할 때였습니다. 

     새벽 두 시쯤, 아시안 노부부님이 제 구역으로 배정되셨습니다. 그 때는 코로나 시국 전이라 마스크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인 특유의 정 넘치는 표정과 영어로 써있는 성함도 확실한 한국식 성함이었지만, 전 영어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여긴 미국이고, 미국 병원에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하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예전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듯이 (미국에서 일하려면 영어 이름이 필요할까요?) 일하는 곳에서나 밖에서 제 겉모습만 보고 만나자마자 무례함을 "농담" 으로 치며 "니하오~" 를 남발하거나, 어느 나라 출신이냐고 다짜고짜 물어보는 분들이 정말 많았고, 전 그것을 예의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행동을 했습니다. 두 분은 한국식 억양이 있으셨지만 유창하게 영어를 하셨고, 환자로 오신 할머님을 대신해서 할아버님이 차트 작성에 필요한 부분들을 많이 대답해주셨습니다. 그렇게 필요한 치료를 받으시고 퇴원을 하실 때쯤, 할머님이 조심스럽게 한국말로 "혹시...한국분이세요?" 라고 여쭤보셨습니다. 그러자 옆에 계신 할아버지께서 "아니 왜 그런걸 물어봐, 실례일 수도 있는데." 라고 하셨고,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저는 바로 "네 한국인이예요^^ 전~혀 실례되는 질문 아니세요." 라고 대답을 드렸습니다. 그러자 할머님께서는 "아이고~ 다행이네. 안 그래도 이 부분이 좀 헷갈렸거든요." 라고 이해가 잘 안 된 부분들을 여쭤보셨고, 저도 편하게 한국어로 설명을 해드렸습니다.

     참고로 미국 병원에는 어디나 정부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통역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신분이 어떻든, 자산이 얼마가 있든, 보험이 없든 아무 상관없이 긴급상황에는 응급실에 와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워낙 다양한 인종들이 사는 곳이다 보니 통역 서비스도 무료로 제공이 됩니다. 미국에는 이중언어를 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간단한 상황 설명들은 그 언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이 간단한 부분들은 도와줄 때도 있지만, 수술 동의서나 수혈 동의서처럼 법적인 서류를 작성해야 하는 상황이거나, 중요한 테스트 결과를 설명할 때 환자의 선호 언어 (preferred language) 가 영어가 아니라면, 반드시 Certified Medical Interpreter (국가 인증 의료 통역사) 를 통해 설명해야 합니다. 워낙 다양한 언어들이 있고, 통역사 분들이 마냥 병원에서 대기할 수는 없기에 전화로 특정 번호를 연결해서 특정 언어를 요청하면 연결이 되어 24/7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다만 전화기 두 개로 한 개는 의료인, 한 개는 환자가 사용하는 상태에서 그 전화 내용을 제 3자의 통역사가 연결하는 방식이라 나이 드신 분들은 힘들어하시기도 합니다. 환자분이 편한 언어를 사용해 질문을 했을 때, 통역사가 그 질문을 영어로 통역해서 의료인에게 전달하고, 다시 그 의료인이 영어로 어떤 정보를 설명해드렸을 때, 다시 통역사가 그 언어로 통역해오는 그 루프 (loop) 를 꽤나 이해하기 어려워하십니다. 그리고 최대한 간단하게 질문을 해야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데, 그냥 물어보고 싶고, 답답하셨던 부분을 한번에 쏟아내시는 분들이 많으시기 때문에 바로 말이 통하는 의료인이 곁에 있는 것과 전화를 통해 연결되는 것과는 천지차이 랍니다.  

     위의 할머님과 할아버님은 처음 응급실 입원 절차를 밟으실 때 선호 언어를 '영어' 로 선택하셨고, 영어로 충분히 모든 상황을 진행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따로 인증 통역사를 연결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퇴원 설명서 중간에 의료용어가 잘 이해가 안되셨던 부분들이 있었고, 그 부분은 제가 한국어로 쉽게 풀어 설명을 해드릴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할머님과 할아버님 모두 정말 감사해하셨고, "이 병원에서, 그것도 응급실에서 한국분 간호사를 뵙다니 정말 안심이 되네요." 라고 말씀을 하시곤 건강하게 퇴원하셨습니다.   

     제가 응급실에서 일하면서 만나뵈었던 환자분은 제 담당은 아니었는데, 제 담당 환자와 가까운 방에 배정된 분이셨습니다. 사실 전 그 분 얼굴을 뵙지도 못했는데 제 담당 환자분을 케어하다가 갑자기 옆 방에서 핸드폰에서 울리는 "카톡! 카톡!" 소리를 듣게 되었고, 덕분에 한국분이 아니실까 생각했었습니다. 그 당시 저희 응급실에는 보호자 관련 룰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상황만 된다면 가족분들이 몇 명이고 들어오실 수 있었는데, 곧 그 분 가족으로 보이는 네 분 정도가 들어가셔서는 한국어로 대화를 하는 걸 듣게 되었습니다. 환자분은 영어가 서투루셨는데 자녀분들로 보이는 분들은 여기서 태어나셨거나 어렸을 때 온 것처럼 영어가 유창하셨고, 한국어가 많이 어눌하셨습니다. 그래도 자녀분들이 계셨기에 환자분께서는 통역사를 신청하는 대신 자녀분들께 통역을 부탁하셨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환자분의 선호 언어가 영어가 아닐 때에 병원 측에서는 혹시나 모를 미래의 법적인 대처를 위해서라도 통역사를 반드시 사용하라고 직원들에게 가르칩니다. 하지만 환자분이 통역사를 거절 (refuse) 하고, 그냥 내 가족이나 친구한테 부탁을 할 때는 다시 한 번 통역사가 무료로 제공되는 것을 알려드리고, 일반 대화를 하는 것과 영어 의료용어를 통역하는 것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다시 한번 통역사 사용을 고려해보시라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위에 말씀 드린 것처럼 통역사와 전화 통화를 하여 연결이 될 때는 모든 통화 내용이 녹음이 되기 때문에 나중에 어떤 상황에서라도 사용할 수 있는 증거가 남게 됩니다. 만약 의료인이 통역사를 사용해서 A, B, C, D, E 를 설명하였을 때 통역사는 반드시 A, B, C, D, E 를 그대로 통역해야 하고, 정보가 정확히 전달되지 않아서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그에 대해 어떻게 환자에게 전달이 되었는지 증거가 남는 것입니다. 하지만 옆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분들께 통역을 부탁했을 때는 A, B, C, D, E 내용이 그대로 환자분께 통역이 되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고, 의료진이 설명해야 하는 내용 중에 환자만의 특히 더 private 한 정보가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까지 가족이나 친구분께 오픈해야 하는 상황이 오기도 합니다. 통역사를 거부하시는 환자분들께 몇번이고 이런 상황들을 다 설명해드리지만, 그래도 무조건 옆에 있는 분에게 부탁하시겠다는 환자분이 계시다면 "환자분께 무료 통역사 서비스에 관한 설명을 충분히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역사 서비스를 거부하고, 함께 있는 딸에게 통역을 부탁하였음." 이라고 차트에 기록하고, 환자의 요청대로 따르시면 됩니다. 

     위의 환자분은 선호 언어가 '한국어' 이셨지만 담당 간호사와 의사가 통역 서비스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드렸음에도 가족들에게 통역을 부탁하길 원하셨고, 그렇게 자녀분들이 통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 담당 환자를 케어하고 있던 도중, 한국인 환자분이 흉부 엑스레이를 받으셔야 하는 상황이 왔습니다. 엑스레이실로 가시는게 아니라, 그 방에서 엑스레이를 촬영할 수 있었기 때문에 환자분만 계시고 가족분들 포함 그 환자 가까이에 있었던 저도 방 밖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촬영 세팅을 다 마친 방사선과 스탭분이 촬영 직전 "Take a deep breath in and hold it!" 이라고 말씀하셨고, 환자분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이셨습니다. 그 때 제 옆에 서 있던 환자분의 따님이 한국어로 "아빠~ 음...,um... 숨! 숨을 쉬지마!" 라고 말씀하셨고, 당황한 환자분께서는 "숨을 쉬지 말라니? 왜?" 라고 어리둥절해 하셨습니다. 옆에서 저는 처음에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그 다음에도 촬영이 안되자, "환자분~ 엑스레이 찍을 때 숨을 크게 들이쉬셔야 해서 그래요. 숨 크게 들이쉬시고 그대로 있으세요. 촬영 끝나면 바로 알려드릴테니까 그 때 숨 내쉬실게요~" 라고 설명을 해드렸습니다. 그러자 환자분이 "아이고 한국분이 계셨네! 알겠습니다." 라고 엑스레이 촬영을 잘 마치셨고, 옆에 있던 가족분들도 감사의 인사를 전해주셨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세번째와 네번째 한국 환자분들은 제가 회복실에서 일하면서 뵙게 된 분들입니다. 세번째 분은 제 담당 환자 분이 아니기도 했고, 한국분인지도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저희 회복실 간호사들은 환자가 수술을 마치고 마취가 끝나가는 상태에서 회복실에 들어오면 바로 모니터에 세팅해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에 누구 담당 환자이건 상관없이 함께 셋업하는 것을 도와줍니다. 마취에서 깨는 모습은 환자분들마다 참 다양한데 이 젊은 여성분은 갑자기 폭력적으로 변하셔서 눈은 감고 있는데 간이침대에서 일어나서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시고 뭐라뭐라 소리를 지르고 계셨습니다. 담당 간호사가 마취과 의사에게 리포트를 받는 동안 저를 비롯한 다른 스탭들은 환자가 최대한 안전하게 셋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수술에는 전혀 이상이 없었고, extubation 도 잘 마무리가 되었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acting up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라고 하고 있는 상황에 갑자기 이 분이 "배가 아파!!!!" 라고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처음엔 저도 잘못 들었나 해서 한국말로 "배가 아파요??" 라고 물어봤더니 다시 한국말로 "어!!! 배가 너무 아파!!!!" 라고 다시 한번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저는 담당 간호사에게 이 분 한국분인 것 같다 한국말로 배에 통증이 심하다고 하신다 라고 말씀드리고, 오더 된 진통제를 가져와 투약했습니다. 마취에서 깨어나시면 보통 내가 누군지, 여기가 어딘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전혀 기억이 안 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전 차근차근 한국말로 현재 상황을 설명해드렸습니다. 그리고 나서도 환자분은 화장실이 급하다고 소리를 지르셨는데, 당시에 소변줄이 있으신 상황이었기 때문에 한국말로 최대한 간단하게 설명을 해드렸습니다. 그러자 환자분은 서서히 진정이 되셨고, 편히 회복을 하셨습니다. 흥미로웠던 것은 이 분은 마취가 깨어나시면서 영어를 아주 유창하게 하셨고, 당신이 소리를 지르신 것은 당연히 기억이 나지 않으셨지만, 영어가 편하신 분이라 영어가 아닌 한국말로 소리를 지르셨다는 것에 굉장히 놀라하셨습니다. 

     네번째 환자분은 제가 바로 어제 케어한 분입니다. 회복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입원실 간호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여기 한국 환자분이 있는데 영어를 전혀 못하셔서 지금은 아드님이 옆에서 도와주고 계신데, (방문자 허용이 안되는) 회복실에서 걱정이 많으셔. 혹시 괜찮다면 이 환자 담당해 줄 수 있을까?" 저는 당연히 문제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수술실과 회복실 상황상 제가 한국 환자분이 나오기 바로 전 환자를 담당하게 되었고, 다른 간호사가 담당하는 대신 제 바로 옆 방에서 회복을 하기로 했습니다. 환자분이 마취에서 서서히 깨실 무렵 저는 한국말로 제 소개를 하고, 아드님과 입원실 간호사가 부탁을 하셔서 인사를 드린다, 어디 불편하신 곳은 없으신지 여쭤보았습니다. 그러자 환자분께서는 눈도 제대로 못 뜨신 상태에서 "아직 어질어질 한 것 말고는 괜찮아요. 아이고 아들도 못 들어온대서 걱정이 많이 되었는데 여기에 한국분이 계시니 마음이 놓이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라며 전 아무것도 안했는데 진심으로 감사해하셨습니다. 제가 한국말을 할 줄 아는 간호사라는 부분만으로 이렇게 누군가에게 큰 안도감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제가 오히려 더 큰 사명감과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물론 다른 한국 환자분들 중에 무조건 교회를 다녀야한다, 우리 교회를 나와라, 결혼은 했느냐, 우리 아들을 만나봐라 등등 무례한 질문을 받은 경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분들은 한 손에 꼽을 정도이며 그 외에 한참 어린 저에게 간호사 선생님이라며 꼬박꼬박 극존칭을 쓰셨던 분, 퇴원하고나서도 정말 감사하다며 컵케잌을 보내주신 분, 여기에서 한국 간호사를 만나니 너무 감동이라며 눈물을 흘리신 분들 등등 좋은 분들을 훨씬 많이 만나뵈었습니다. 영어가 마냥 편치 않으신 상태에서 병원을 가야 하는 불편한 상황에 제가 미국에 있는 한국인 간호사라는 이유만으로 미국에 계신 한국분들께 힘이 된다는 사실에 책임감을 더 느끼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간호 관련 다양한 커리어들을 생각하고 있지만, 그 중에 하나는 더 한국 환자분들께 편하게 케어를 제공해드릴 수 있게 Certified Medical Korean Interpreter 가 되는 것이 제 작은 목표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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