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간호사

죽음을 맞이하는 다양한 문화와 인식 차이

간호사 멘토 소피아 2021. 8. 9. 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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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간호사 멘토 소피아입니다. 제가 너무 오랜만에 포스팅을 올리죠ㅠㅠ 제가 현재 일과 병행하고 있는 학업에 치여 이번 학기 final week 까지 다 끝낸 후에야 이렇게 올 수 있게 되었답니다. 앞으로는 시간 관리를 더 잘해서 학교 스케줄이 겹치더라도 포스팅은 제 시간에 올릴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미국에서 간호사로 일하면서 마주친 죽음을 맞이하는 다양한 문화와 인식의 차이에 대해서 공유하려고 합니다. 제가 병동에서 일했을 때는 호스피스 환자 분들의 죽음만을 곁에서 보았지만, 응급실에서 근무를 시작하기 전 응급실 오리엔테이션의 일부인 중환자실 로테이션과 응급실에서 3년 넘게 일하면서는 그 누구에게도 준비가 되지 않은 죽음을 많이 맞이했었습니다. 아무리 병원이 바쁘고 병실 자리가 없어도, 누군가가 돌아가시면 가족분들이 앉을 의자와 티슈를 준비하고, 커텐이나 문을 꼭 닫아 정신없는 병원의 상황과 분리를 시켜 그 곳만은 슬로우모션이 되는 듯한 느낌입니다. 코로나 전에는 가족분들을 다 병실 안에 모셔서 마지막 인사의 순간을 공유할 수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코로나 이후에는 보호자 한 명, 아니면 최대로 두 명까지만 병실 안으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셀 수도 없이 많은 죽음의 순간과 슬픔을 목격하였지만, 그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사람들마다 죽음을 맞이하고 표현하는 방식은 다르겠지만, 전혀 예상을 뛰어넘는 문화적 차이로 인해 저 뿐만이 아니라 미국인 간호사들도 순간 당황했던 순간들이 있었답니다. 

1. 웃고 악기를 연주하며 그 사람이 살았던 생을 기뻐해주던 아프리카의 한 지역 문화.

     제가 중환자실에서 로테이션을 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제 담당 환자는 아니었는데, 그 환자는 중환자실에 일주일 정도 계셨고, 안타깝게도 예후가 좋지 않으셔서 중환자실의 모든 스탭들이 알고 있는 환자였습니다. 여러번의 가족 회의 끝에 환자의 아드님은 어머니의 인투베이션을 끝내기로 했고, 혹시 자신의 문화대로 가족들과 함께 이 순간을 애도해도 되는지 물었습니다. 담당 간호사는 필요한 건 무엇이든지 하시라고 하셨고, 코로나 이전이었기 때문에 6명 정도의 가족분들도 중환자실에 들어오셨습니다. 그 분들은 중환자실로 들어오시면서부터 갑자기 큰 소리로 웃으셨고, 그 중에 한 분은 작은 북 같이 생긴 것을 들고 북소리를 내며 들어오셨습니다. 담당 간호사를 포함한 저희는 너무 놀라서 바라보고만 있었는데, 그 분들은 마치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일이 발생한 것처럼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고, 껴안고, 웃으며 그 환자의 병상을 에워쌌습니다. 다행히(?) 중환자실의 모든 환자들이 인튜베이션에 sedation 을 받고 계셔서 실제로 깨어있는 환자들은 없었지만, 그 분들도 소리는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담당 간호사는 소리를 조금만 줄여줄 수 있는지 정도만 부탁했습니다. 저는 순간 이 환자분이 가족들과 사이가 너무 안 좋았어서 이렇게 기뻐하는 건가 생각했는데, 나중에 아드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분들은 죽음을 "끝"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기뻐하고 축하하며 죽음을 또 하나의 "행복한 여정" 으로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을 한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이 상황은 저 뿐만이 아니라 모든 스탭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다양한 문화에 대해 배울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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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매우 드라마틱하게 슬픔을 표현했던 캐리비안의 한 지역 문화.

     제가 응급실에서 charge nurse 였던 날이었습니다. 앰뷸런스를 타고 들어오셨을 때부터 이미 컨디션이 많이 안 좋으셨던 할머님이 계셨는데, 스탭들이 30분 넘게 코드 진행을 하다가 응급실 선생님이 공식적으로 사망 선고를 선언하셨습니다. 이 때도 코로나 전이라서 이미 소식을 듣고 온 가족분들이 대기실에 가득 차 있었는데, 워낙 응급실에 환자들이 많았던 날이라 우선은 할머님의 아들만 병실에 들이고, 가족분들은 계속 대기실에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아드님은 저에게 당신이 어머니와 시간을 보낼 동안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가족분들께 대신 소식을 전해줄 수 있냐고 물었고, 저는 충분히 어머님과 인사 나누시라고 말씀드리고 대기실로 나갔습니다. 응급실 대기실을 꽉 채우고 있던 가족들에게 할머님의 소식을 전해드리니 그 많은 분들이 갑자기 크게 소리를 지르며 엉엉 울거나, 바닥에 자기 몸을 내던지거나 대기실 의자를 쾅쾅 치기도 했습니다. 저는 너무나 놀랐고, 응급실 입구에 항상 서 있는 시큐리티도 놀라서 뛰어와서는 저에게 무슨 상황이냐 물었습니다. 저는 그 분들께 슬픈 마음은 백번 이해하나 다른 환자분들도 있기 때문에 조금만 진정해달라 부탁드렸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캐리비안의 한 나라 출신이셨던 이 분들의 문화는 슬픈 감정을 더 크고 시끄럽게 표현하면 할 수록 돌아가신 분에 대한 예의와 애정표현이라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3. 남편의 건강했던 모습만 기억하고 싶으셨던 할머님.

      제가 있는 뉴욕의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고 있었던 4월, 전 응급실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응급실에는 소아환자가 아닌 이상 보호자가 응급실은 커녕 병원 안에 들어오지도 못했었습니다. 때문에 가족들이나 보호자들은 아픈 환자를 응급실에 데리고 온 후에는 자신의 차 안에서 기다리거나 집으로 돌아가서 의사의 전화를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한 할아버님이 앰뷸런스로 급히 이송돼오셨고, 긴 시간의 코드 끝에 슬프게도 사망선고를 받게 되셨습니다. 할머님은 앰뷸런스를 따라 직접 운전하셔 오셔서 병원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계셨다고 안내받았습니다. 담당 선생님은 할머님께 우선 응급실로 들어오시라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이미 상황을 예측하고 계셨던 듯 너무나 착잡한 표정으로 들어오신 할머님은 병실 밖에서 대화를 하고 싶으시다고 하셨습니다. 저희는 이런 상황에서 다리에 힘이 풀리는 보호자분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병실 밖에 의자를 준비해 앉혀드리고, 담당 선생님께서 상황을 설명해드렸습니다. 할머님께서는 눈을 질끈 감으시고는 한참동안 병실 앞에 가만히 앉아계셨습니다. 안에 들어가셔서 남편분 얼굴 뵙고 하실 말씀 있으시면 하셔도 된다고 안내해드리는 제 손을 꼭 잡으신 할머님은 남편의 생애 건강하고 좋았던 모습만 기억하고 싶으시다며,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제가 병실 안에 들어가서 남편의 소지품들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 부탁하셨습니다. 저는 방에 들어가서 할아버님의 옷과, 소지품과, 지팡이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할머님께서는 할아버님이 생전 쓰셨던 지팡이를 빤히 쳐다보시더니, 이제 필요없는 물건인데 필요한 사람에게 주거나 버려주세요. 라고 부탁하시고는 저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할아버님의 자켓과 소지품들을 품에 꼭 안고 걸어 나가셨습니다. 

     미국에서 일을 하면서 정말 매일 여러곳에서 다양한 문화 차이를 느끼는데, '죽음'에 대한건 어느곳에서나 누구나 똑같이 반응하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던 저의 무지함이 드러나는 순간들이었습니다. 심장이 멎었더라도, 뇌사 판정이 나도, 청력은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있는 감각기관이라고 합니다. 개개인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은 다르겠지만, 혹시 기회가 된다면 마지막인 순간이 다가올 때 얼마나 그 분을 사랑했는지 그리고 사랑하는지 귓가에 마지막 인사를 전하는 것도 하나의 작별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 전 다음주에 새로운 포스팅으로 찾아뵙겠습니다. 항상 건강 조심하시고 안전하게 여름 즐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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