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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간호사 멘토 소피아입니다. 오늘은 제가 미국에서 간호사 면허를 따고 처음으로 취직된 병원에서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그 곳에 출근한지 3주만에 더 이상 출근하지 말아달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사실 제 기억속에서 많이 잊혀진 곳인데, 반대로 잊고 싶어도 잊혀지지 않는 스토리가 많은 곳이기도 했답니다.
포스팅 제목에서 짐작하셨겠지만 제가 간호사로써 처음 출근하게 된 곳은 소아 정신병원이었습니다. 제 블로그의 가장 첫 글이었던 "빽이 아니라 네트워킹. 낙하산이 아니라 능력자." 포스팅에서 언급했다 싶이 전 주변의 고마운 분들 덕분에 취직의 기회를 얻을 수가 몇 번 있었고, 이 곳도 학교 선배의 추천으로 면접을 보고 합격 통지를 받게 되었습니다. (위의 포스팅을 작성할 때도 제가 소아 정신병원에 출근했었던 사실조차 잊고 있었을 정도로 저에게 이 곳은 마치 봄 아지랑이 같은 곳입니다.) 첫 출근을 하기 전에 주변에 이 병원에 대해서 물어보니, 신규 간호사로써는 좀 힘든 곳이 아니겠냐는 반응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경력이 없는 저에게는 더 할 나위없이 소중한 기회였기에, 정말 힘들더라도 1년만 버텨서 경력을 쌓아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동네에서 악명 높았던 소아 정신병원이었기에 제가 실제로 겪은 상황들을 설명하다보면 어떤 분들에게는 너무 징그럽다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런 부분이 나오기 전에 제가 미리 문단 시작점에 경고 표시를 해놓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취직한 병원은 나이별로 소아병동과 청소년 병동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그 안에서도 병의 증세에 따라 병동들이 나뉘어져있었습니다. 취직한 첫 주의 오전은 강의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오후에는 병동 실습 오리엔테이션을 받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저는 그 중에 가장 어린 소아 병동(만 4세에서 11세)부터 병동 실습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간호 학생 시절에 정신과 실습을 했던 병원은 병원 상황을 잘 모르는 간호 학생 입장에서 봐도, 병동 내 커리큘럼이 잘 짜여져 있었고,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분들 모두 프로페셔널했고, 응급 상황이 발생해도 신속히 모두에게 안전하게 상황 정리가 잘 되었던 곳이었습니다.
이 병원에서는 이중문을 열고 소아 병동으로 들어가자마자 머리에 진동이 느껴질 정도로 시끄러운 ghetto 음악이 먼저 들려왔습니다. 아이들에게 절대 부적절한 욕과 슬랭으로 가득찬 음악이 나오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수다 떠는 간호 조무사들, 그들 앞에서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는 아이들, 약 먹기 싫다고 간호사에게서 도망다니는 아이들, 뭐가 그렇게 서러운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엄마를 찾으며 우는 아이들, 그 와중에 구석에 앉아 책을 들고 앉아있는 아이들 등등 전혀 컨트롤 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전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 프리셉터는 제 표정을 못 본건지 아니면 못 본척 한 것인지, 이 상황이 당연하다는 듯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병동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전문적인 케어를 받기 위해서 가족과 떨어져서 힘들게 병원 생활을 하고 있는 아이들일텐데, 너무나 무질서고 질 좋지 못한 환경에 전 굉장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병동 설명 후에는 오후 투약 시간이라 med room 에서 선배 간호사들이 약을 정리하고 투여하고 차팅하는 방법들을 배우기로 했습니다. 물론 도망다니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신의 약 시간을 알고, 차례로 줄을 서서 자기 약을 받고, 삼키고, 혹시 숨겼을까봐 혀 밑과 입 안쪽까지 꼼꼼히 검사받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거나 공용 공간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차례로 아이들을 맞이하던 중, 한 남자아이를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왜소한 체격의 만 4살 남자아이였는데 그 아이 옆에는 씨름선수만한 덩치의 남자 간호 조무사가 1:1 로 이 아이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이 남자아이는 자신의 약을 받으면서 투약 담당 간호사 옆에 있던 저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 눈빛은 제가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 중에 나이를 막론하고 제일 서늘하고, 깊고, 분노가 담긴 소름이 끼치는 눈빛이었습니다. 도대체 지금까지 어떤 일들을 경험했길래 저 나이에 저런 눈빛을 갖고 있는지 선배 간호사에게 물어봤지만, 아직 제가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돼서 자세히 말해줄 수는 없다며 대신 부모님은 둘 다 감옥에 있고, 저 아이가 체격이 저리 작아도 한번 고삐가 풀리면 성인 두 명도 컨트롤 못하는 상황이 몇 번이나 발생해서 1:1 감시를 받고 있다고 말해줬습니다.
오후 투약 시간까지 잘 마치고 이제 한숨을 돌리나 싶었는데 갑자기 한 명의 남자아이가 병동으로 들어왔습니다. 새로 온 환자인가 했더니 아이들과 간호사들 모두 이 아이를 잘 아는 듯이 반기고 있었습니다. 만 6~7세의 남자아이였는데 병동에 있는 모든 스탭들과 아이들에게 한 명씩 다가가서 신나게 인사를 하고, 처음 보는 저에게도 싱글벙글 웃으며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저 아이는 자주 입원을 해서 오는 환자냐(?) 물어보니 사실 저 아이는 오래 입원을 했던 환자였고, 아직 퇴원을 할 때가 아니었는데, 몇 일전에 아이의 어머니가 자기 결혼식을 하는데 꼭 아들이 참석했으면 해서 의료진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퇴원시켜 데려갔다고 합니다. 다시 이 아이가 들어오게 된 이유가 어떻게 됐나 알아보니 (*다소 충격적인 상황이 묘사될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결혼식을 잘 마치고 피로연이 진행되고 있는 도중에, 친척들과 함께 원형 테이블에 앉아있던 이 아이는 자신 앞에 놓여있는 은칼과 포크를 들고, 싱글벙글 웃으며 옆에 앉아있던 사촌의 팔을 자르려는 시늉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사촌도 웃으면서 장난으로 자신의 포크를 들었는데, 갑자기 이 아이가 그 사촌의 팔에 깊게 상처를 냈다고 합니다. 순식간에 피로연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그 와중에도 이 아이는 자신의 칼과 포크를 들고 깔깔깔 웃으면서 피로연장을 뛰어다니며 자신을 막으려는 모든 사람들을 칼로 찌르려고 했고, 결국 경찰이 나서야 하는 상황까지 되었다고 합니다.
소아병동에서의 첫 일주일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든 생각은 '도대체 이 아이들은 지금까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어른들에게 어떤 상황들을 겪어왔길래 어린 나이에 저렇게 마음이 아플까' 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 병원은 현대적인 의학과 약물의 도움을 받는 곳이기도 하지만, 제 2의 가족이자 제대로 된 어른들의 모습을 배우는 곳이기도 해야하는데, 전혀 그런 분위기가 아님에 저는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처음 이 곳에 취직을 했을 때 저는 간호사로써 뿐만이 아니라, 이 아이들이 본받을 수 있는 제대로 된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기로 마음을 먹었었는데, 마치 저는 이미 새까만 물에 빠진 하나의 물방울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이미 까맣게 변한 물을 바꿀 순 없었고, 그로 인해 일을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가치관과 맞지 않는 이 곳에서 계속 일하는 것이 과연 맞는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제 고민은 3주내에 끝이 났습니다. 같은 오리엔테이션 동기 덕분에 더 이상 그 곳에서 일을 못하게 된 덕분(?)이었죠ㅎㅎ 그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 바로 이어서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제 포스팅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로그인 없이도 남길 수 있는 댓글과 하트는 제게 힘이 된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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